1838년 영천향교의 養士齋를 새로 건축하면서 養士齋新築의 경위를 밝히고 있는 養士齋上梁文.
내용 및 특징
본 문서는 1838년 永川鄕校에 養士齋를 新築하면서 지은 上梁文이다. 朝鮮後期에 이르면 書院이 지나치게 많이 건설되어 書院도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각 지역의 鄕校역시 무절제한 校生 관리로 인해 그 교육적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在地士林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특권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司馬所 ․ 興學堂 ․ 養士齋 등을 重建 또는 新築하여 지원하고 육성하였다. 永川鄕校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儒林의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기 위한 養士齎를 永川郡守洪耆燮과 몇몇 永川의 長老들이 공동으로 出資하여 건립한 것도 대략 그와 비슷한 이유라고 짐작이 된다. 본 上梁文을 쓴 사람은 영천의 선비 李遠欽이며, 永川郡守洪耆燮은 필요한 자본과 총괄적 방향제시를, 실제 공사의 총 지휘는 鄕老인 李廷楷와 朴孝元이, 작업현장의 지휘는 鄭徹休․枊惠進․枊榮秀등이 각기 분담하여 養士齋를 완성시켰다.
자료적가치
朝鮮後期에는 書院과 鄕校의 교육기능이 점차 쇠퇴해짐에 따라 在地士林은 이를 대신할 교육기관으로 養士齋 ․ 興学堂 ․ 司馬所등의 건설 ․ 중건 및 그 운영에 힘썼다. 본 上梁文도 이러한 朝鮮後期의 鄕校사정을 잘 나타내주는 문서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民族文化硏究所,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慶尙北道, 1991
民族文化硏究所,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