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재건된 永川鄕校大成殿을 重修할때 작성한 上梁文
내용 및 특징
본 문서는 永川鄕校의 大成殿을 중수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慶北鄕校誌』의 永川鄕校연혁에 의하면, 1592년 임진란으로 인해 大成殿이 소실되어 宣祖 32년(1599) 重修가 시작되었고, 광해군14년(1622)에 重修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英祖 12년․20년․27년․30년에 각기 大成殿의 보수가 이루어졌고, 正祖1년(1777)에도 大成殿이 보수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을 감안하면, 본 上梁文은 광해군14년(1622년)에 지어졌다. 또 하나의 상량문인 ’대성전중수상량문후지‘와 동일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 上梁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成殿은 聖人의 敎化가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儒敎의 융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壬辰年에 倭軍이 침략하여 大成殿이 소실되었고, 位版은 요행히 난리를 면하였다. 亂後에 임시로 大成殿이 重建되었지만 건물이 퇴락하고 비바람에 의한 손상이 심하므로, 이에 重修하여 聖人의 敎化를 크게 드리우자는 것이다.
자료적 가치
壬辰亂(1592)의 발발로 인해 朝鮮의 鄕校 대부분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鄕校는 지역민을 다스리는 敎化의 중심지역이기 때문에 大成殿과 明倫堂은 하루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永川鄕校의 大成殿은 여러 차례 重修되었는데, 본 上梁文은 壬亂 以後 大成殿 重修時에 작성된 上梁文으로 추정된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嶺南大學校出版部,
民族文化硏究所,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경상북도, 1991
民族文化硏究所,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