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년 9개조의 규약과 좌목으로 만들어진 세호계안(世好稧案)
내용 및 특징
우향계은 李增(固城李氏)이 안동으로 낙향하여, 1478년에 학덕있는 안동의 선비 12명(안동권씨 3명·흥해배씨 4명·영양남씨 4명·안강노씨 1명)과 함께 조직한 것이다. 이 우향계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족의 후예들이 안동출신 사족들과 연대하여 결속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자 한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후손들에 의하여 여러 명칭으로 이어졌다. 이들 13인이 우향계를 조직한 뒤, 이증의 아들 李浤이 그의 아우, 매부 및 다른 회원의 손자, 사위 등 15명과 함께 ‘眞率會’를 조직하였으며, 이굉의 서자 李側이 아버지의 碑陰記에 진솔회를 결성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이 진솔회가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진솔회원인 이굉의 신도비에 의하면 이굉은 73세 때인 1513년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낙동강 상류에 歸來亭을 짓고 향중의 선비들과 진솔회를 결성하였으며, 3년 후인 병자년에 타계하였다고 한다. 이 내용에 따른다면 진솔회 결성은 1513~1516년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처음 우향계를 만들었을 때는 5개 성씨가 참여하고 있었지만, 이중 흥해 배씨와 안강 노씨가 보이지 않고 淸州鄭氏 2명, 안동김씨 2명, 潘南朴氏 1명, 綾城具氏 1명 등의 인물이 새롭게 보인다. 충재종택에 소장된 우향계축에서 權萬은 이들 정, 김, 박, 구씨가 우향계축의 외손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 진솔회는 友鄕稧員들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진솔회에 이어서 1702년 10월 28일에는 우향계의 후손들 중 안동권씨 10명, 고성이씨 1명, 흥해배씨 1명이 연명하여 11월 10일에 계회를 개최함을 알리는 回文을 돌렸다. 그 결과 11월 10일에 60여 명에 이르는 계원들이 우향계와 진솔회의 계승을 표방하며 천등산봉정사에 모여 世好稧로 계의 명칭을 변경하고 총 9개조의 규약을 의결하여 정하였다. 1703년에 작성된 世好稧案에는 진솔회의 모임과 관련해 의결된 9개조의 규약과 당시 집회에 참석하였던 87명의 명단이 나오고 있어서 주목된다. 의결된 9개 조항을 보면, 하나 1년에 한번 3월내지 9월에 정기회의를 갖는다. 하나 회의 날짜와 장소는 유사가 임시로 齋會하여 정한 후 통고한다. 하나, 모일 때는 각자 술병과 합을 지참하되 간편, 검약을 힘써 쫒아 진솔의 유의를 보존할 것. 하나, 유사가 혹 글을 보내거나 모일 때 만일 어긋나는 폐가 있으면 따져서 벌할 것. 하나, 유사와 본관 네명, 타관은 각기 한명씩 한번 모인 뒤에 교체할 것. 하나, 이제 이 修稧는 실로 우연이 아니다. 각자 조심해서 우향과 진솔의 남은 뜻을 따라 시종 변치 않을 것. 하나, 계안 및 모든 문서는 유사가 인수인계를 해서 유실함이 없을 것. 하나, 덕업을 서로 권장하고 과실을 서로 규제하고, 어려움을 서로 구제하는 일 등은 한결 같이 여씨향약을 따를 것. 하나, 이번 모임에 미참한 회원은 다음 모임에 마땅히 추가로 쓰되 또한 정원이 없을 수 없다. 이 후 두 번째 모임의 경우에는 추록하지 말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좌목을 부기하였는데, 여기에는 총 87명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처음 봉정사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는 62명 이었다가, 1년 후에 25명이 늘은 것은 이후부터 계안에 명단을 추록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을 성씨별로 분류하면, 안동권씨 57명, 영양남씨 7명, 고성이씨 5명, 흥해배씨 5명, 청주정씨 3명, 안동김씨 1명, 전주류씨 3명이 있다. 이중 전주류씨는 안동권씨의 외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이상을 종합하면 처음 우향계에서 시작한 5개 성씨 중 고성이씨, 안동권씨, 흥해배씨, 영양남씨만이 남아있으며, 중간에 반남박씨, 능성구씨, 안강노씨가 빠져있다. 각 성씨들 간에도 우열차기 극명히 나눠지고 있는데, 처음의 우향계 때와는 달리 실질적인 모임의 주체와 운영은 안동권씨 일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의 거주지는 녹전동가야리, 북후면도촌리, 신세동법흥리, 예천용문면저곡리, 봉화금계리 등으로 안동과 그 인근에 살고 있었다.
자료적 가치
‘友鄕稧帖’은 당초 ‘우향계축’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승한 ‘진솔회'와 ’세호계‘ 및 ’수호계‘까지 400여 년간 당초 회원 13명의 내외후손들이 그때 그때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확대 재결성하고 모임 때마다 회원들의 송시첩을 잘 정리해 놓은 책자로서 1478년에 작성된 우향계가 어떻게 계승· 발전해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조선시대 계회의 변천사례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충재종택, 『友鄕契軸』(보물 제896-1호) / 안동민속박물관,『友鄕稧案』, 시도유형문화재 제327호.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7.
『安東의 契』, 安東民俗博物館 編, 安東民俗博物館, 2006
이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