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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노응규(盧應奎) 창의문(倡義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2+KSM-XF.1895.4817-20100731.Y101041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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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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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격문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격문
작성주체 노응규
작성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작성시기 1895
형태사항 크기: 34 X 4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천 영천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천 영천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안내정보

1895년 노응규(盧應奎) 창의문(倡義文)
1895진주(晋州)에서 항일의병활동을 한 노응규(盧應奎)가 경상북도 일대의 향교에 나라의 수치를 씻기 위해 의병투쟁을 전개하자고 호소하는 창의문(倡義文)
남민수

상세정보

1895진주(晋州) 일대에서 항일의병(抗日義兵)을 조직하고 봉기한 노응규(盧應奎) 등이 경상북도 일대에 발송한 창의문(倡義文)
내용 및 특징
1895진주(晋州) 일대에서 항일의병을 조직하여 활동한 노응규(盧應奎) 등 의병 진영에서 경상북도북부 일대의 향교에 발송한 창의문(倡義文)이다. 작성자가 진주·거창(居昌)·안의(安義)·초계(草溪)·현풍(玄風) 등의 명칭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들 지역에도 창의문이 전달되도록 한 것이라 생각된다. 끝의 부가항목에 ‘읍(邑)에는 1월 7일 도착함(到邑元月初七日)’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월 8일 진주에서 발송된 창의문이 1896년 1월 7일에야 영천향교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1894년의 갑오경장과 1895년의 을미사변(乙未事變) 및 단발령(斷髮令)은 전국 각지의 뜻 있는 유생들에게 국권상실(國權喪失)의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켜 의병운동을 전개하도록 만들었다. 본 창의문의 내용은 국모(國母)를 시해하고 선왕(先王)의 제도와 법복(法服)을 고치며, 머리를 강제로 깎게 하는 등, 일본의 국권침탈과 국가모독이 차마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감연히 궐기하여 국가의 수치를 씻고 국가의 문물제도를 회복하자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자료적가치
을미사변(乙未事變) 이래, 전국의 유림(儒林)은 국치(國恥)의 설욕을 주장하며 각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상북도에서는 특히 안동(安東) 일대의 의병활동이 있었고, 경상남도에서는 진주 일대의 의병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의병활동은 각지의 향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에도 향교에 남아 있는 문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본 창의격문은 이 시기 유림의 의병활동을 입증해 주는 주요 사료의 하나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한말전기의병』, 김상기,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남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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