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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영천향교(永川鄕校) 완문(完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2+KSM-XD.0000.4723-20100731.Y101041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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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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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증빙류-완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세금-완문
작성주체 영천군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형태사항 크기: 67 X 58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천 영천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천 영천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

안내정보

기미년 영천향교(永川鄕校) 완문(完文)
기미년에 영천군에서 영천향교전사청(典祀廳)의 수리를 위해 영천향교의 면강교생 4명에게 원납전을 받고 각종 군보(軍保)와 잡역의 면제를 허가해준 완문(完文)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民族文化硏究所,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慶尙北道, 1991.
民族文化硏究所,
남민수

상세정보

기미년에 영천군에서 영천향교典祀廳의 수리․보수를 위해 4명의 免講校生에게 禮錢을 받고, 이들을 軍保와 雜役에서 면제한다는 취지로 발급한 完文.
내용 및 특징
본 문서는 영천군수가 부임 초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영천향교典祀廳의 수리․보수를 위해 재원조달에 고심하다가 군영수리 후 남은 목재와 기와 등 물자를 조달하는 한편, 免講校生 4명에게 願納錢을 받고 軍保와 雜役의 면제를 확인해 주기 위해 발급한 完文이다. 비록 향교의 교육적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면서 朝鮮 時代 後期의 향교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점차 미미해졌으나, 守領七事의 하나로 거론된 정도로 地方官에게는 향교교육의 진흥이 중대한 과제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향교 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바닥이었기 때문에 향교는 자체시설의 유지․보수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본 문서를 보면, 영천군수가 취임 초부터 典祀廳의 수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재정의 미비로 착수를 못하다가 군영수리로 남은 자재와 免講校生의 願納錢을 합쳐서 겨우 典祀廳을 수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가치
朝鮮 시대 후기의 향교는 자체의 건물수리가 어려울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미약하였다. 본 문서는 지방수령과 향교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자료이며, 아울러 免講校生 등의 문제가 열악한 향교재정에 기인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民族文化硏究所,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慶尙北道, 1991.
民族文化硏究所,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기미년 영천향교(永川鄕校) 완문(完文)

完文
右文爲完護事鄕校典祀廳乃釋菜大享
時祭需供奉之所所係重大而年久敗廢修補沒時
生事丁寧故莅官之初已悉親審而未趁修補者
緣於財力之絶無責處今方營修瓦材已爲措辦
而値此解歸之日中途撤役極爲憫然財力不可不辦
給故依古規願納免講校生四名某民等處捧禮錢幾許以
爲重修禮具之資是遣完文成給爲去乎此與額內
校生事體一樣此後軍官旗牌及冬項軍保一切
勿侵爲旀烟一戶雜役置亦爲蠲減以爲重地永久
遵行之地爲旀完文一丈成置校中爲遣此後如有橫
侵之弊是去等持此文告官憑考施行向事
己未六月十二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