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에 영양군수가 향교의 기강해이를 질책하며, 향교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해이해진 향교의 기강을 일대 쇄신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의 下帖.
내용 및 특징
1904년에 英陽郡守가 英陽鄕校에 내린 下帖이다. 大韓帝國 시기의 교육은 近代新式敎育을 추구하면서도 人材양성의 근본적 목적은 君主에 대한 忠誠 등 儒敎理念의 强化에 두는 등, 매우 기형적인 것이었다. 이 시기 各 地方의 鄕校는 종래 교육기관의 역할을 점점 더 新式學校에 빼앗기면서 그 有在意義를 상실하고 있었다. 鄕校의 위축에 따라 校任과 校生의 紀綱도 대단히 해이해졌다. 본 문서의 내용에 의하면 正學을 밝히기 위해서는 鄕校의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나, 英陽鄕校의 경우 무자격한 校任이 선출되는가 하면 鄕校 본연의 經學工夫는 침체되는 등의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이에 英陽郡守는 儒敎敎化의 中心地가 바로 鄕校임을 상기시키며, 향원들이 서로 학문을 연마하고 風俗敎化에 힘씀으로서 鄒魯之鄕이라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을 지시하였다.
자료적가치
近代新式敎育이 도입되면서 各 郡의 鄕校는 그 財政의 일부를 近代小學校에 지원하거나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대우받게 되었다. 大韓帝國 시기의 여러 가지 조치로 인해 鄕校는 서서히 붕괴되었으며 각종 모순이 계속 나타나게 되었다. 본 문서는 大韓帝國 시기의 鄕校政策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고문서라 할 수 있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