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英陽郡守가 齋任名單을 成冊으로 만들어 통보할 것을 지시하는 下帖이다.
내용 및 특징
1899년 英陽郡守가 英陽鄕校에 내려 보낸 下帖이다. 大韓帝國의 성립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近代敎育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전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으나 新式敎育이 새로운 敎育의 中心方向으로 설정되면서, 衛正斥邪思想과 더불어 朝鮮時代 敎育의 주축을 담당하였던 鄕校는 급속하게 그 位相과 影響力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學部를 비롯하여 宮內府의 책임자들은 鄕校 자체의 어려움과 유지관리에 대해서는 모른체하면서 신식학교의 건설이나 皇室財産의 확장을 위한 향교재산의 轉用에 열중하였다. 결국 향교재산의 전용에 대해 항의하는 儒林을 달래거나 鄕校鄕員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하는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본 문서는 아마도 상급기관(府訓令)에서 齋任의 임명까지 관여하려 했는지, 齋任의 姓名을 成冊하여 보내라는 하첩이다. 그러나 鄕員들의 반발이 있었는지 文書의 成冊이 즉각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때문에 英陽郡守는 書員處에서 빨리 齋任들의 명단을 成冊으로 만들어 발송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자료적가치
大韓帝國은 近代新式敎育을 입안하여, 여러 가지 敎育章程들을 만들면서 근대교육제도의 도입을 서둘렀으나 敎育財政의 부족을 鄕校의 財源에서 충당하려고 하다 보니 각 지역의 향교와 크고 작은 마찰이 많이 일어났다. 英陽郡守가 齋任의 명단을 요구했으나 書員處에서 이를 차일피일 미루었다는 것은 이러한 鄕校側의 불만을 反映하고 있는 듯하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