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삼가현玉溪洞에서 결성된 玉溪亭契의 역대 계원 명부로 1786년에 작성
[내용 및 특징]
조선후기 경상도三嘉縣玉溪洞 일대에서 실시되었던 玉溪亭契의 역대 계원 명부이다. 본 洞案은 17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704년인 甲申 2월 29일 修正 동안부터 1741년인 辛酉 2월 29일 동안까지 역대 동안이 집록되어 있다. 따라서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의 옥계정계 계원 명단을 확인 할 수 있다. 先案이라고 명명한 것은 동계 실시 초창기부터 1741년까지의 동계 선배들의 이름을 수록하였기 때문이다.
옥계정계가 실시되었던 삼가현은 현재 경상남도합천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합천군봉산면노파2구사창마을이었다가 합천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곳으로, 지금은 고삼리에 편입되어 있다. 옥계정계의 원래 명칭은 옥계동계였으나 옥계동에 玉溪亭이 설립된 이후로 옥계정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옥계정계 관련 자료로는 본 자료를 비롯하여 「洞案 甲申二月十九日修正」(1704), 「洞案 己亥年修正」(1719), 「洞案」(1685~1701), 「洞案 新案」(1685~1766), 「洞案」(1735~1765), 「玉溪洞先案」(1816), 「玉溪洞案」(1741~1798), 「玉溪洞案」(1884), 「玉溪亭續契名案 乙未十一月」(1955~1980), 「玉溪亭契案」(1978), 「玉溪洞內扶助節目」(1774)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옥계동선안」은 앞서 제작되었던 「동안 갑신2월19일수정」(1704), 「동안 기해년수정」(1719), 「동안」(1685~1701), 「동안 신안」(1685~1766), 「동안」(1735~1765)의 기재인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형식은 먼저 이름을 수록하고, 追錄된 일자와 당대 계임인 座上・公事員・有司의 성씨를 기재하는 방법으로 되어 있다. 가장 앞의 것은 「동안 갑신2월19일수정」(1704)의 것을 옮겨놓은 것이다. 두 번째는 앞선 동안에는 없는 1710년 庚寅 3월 수정 동안이 수록되어 있다. 세 번째 것은 「동안 기해년수정」(1719)을 옮겨 놓은 것이다. 네 번째는 1664년 甲辰 3월 초8일의 동안이다. 앞선 세시기의 동안은 모두 18세기 초에 작성된 수정 동안을 옮겨 놓은 것으로, 17세기 중엽에 활동했던 계원들이 수록되어 있다. 갑진년의 동안부터는 그해에 추록되었던 계원들을 기재한 것이다. 다섯 번째 1685년 乙丑 3월 23일부터 마지막 1741년 신유 2월 29일 동안까지 기재된 인물은 앞선 「동안」(1685~1701), 「동안 신안」(1685~1766), 「동안」(1735~1765)의 것과 중복된다. 「옥계동선안」 작성 당시의 계임은 좌상 魚長連・崔南老・金萬光, 공사원 金萬澤, 유사 曺姬謨로 가장 마지막에 기재되어 있으며, 이중 4명의 手決이 남아 있다.
「옥계동선안」은 칼로 이름을 도려낸 削名 흔적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앞서 제작되었던 옥계정계 동안에서는 특정 성씨와 계파의 이름을 삭명한 흔적이 남아 있거나, 동시대를 다루는 복수의 동안이 제작되어 향촌 내 동계 운영상의 갈등이 노정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본 동안의 경우 삭명된 흔적이 없으며, 앞서 확인할 수 없었던 성씨와 계파가 나타나 이러한 향촌 내 갈등이 어느 정도 무마된 다음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먼저 이전의 옥계정계 명부 관련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淸州慶氏가 慶發을 필두로 확인된다. 그리고 義城金氏 金克敏과 그의 아들인 金八楷・金八和 형제 및 그 후손들도 확인된다. 물론 앞선 동안에는 기재되었으나 「옥계동선안」에서 누락된 인물, 삭명되었던 인물로 「옥계동선안」에 기재되지 못한 인물도 있으나, 선대에 작성되었던 동안 기재 인물들을 대부분을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옥계동선안」은 옥계정계가 최초 결성되었던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의 본 동계를 주도했던 세력의 파악을 가능하게 해준다.
중복 기재된 인물을 제외하고, 「옥계동선안」에는 총 252명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 성씨는 崔씨 47명, 魚씨 42명, 慶씨 23명, 朴씨 21명, 宋씨 18명, 全씨 16명, 柳씨와 曺씨가 각 14명, 權씨 13명, 金씨 12명이며, 그 외 郭씨・劉씨・林씨・文씨・方씨・安씨・李・鄭씨・韓씨・洪씨가 확인된다. 1978년 「옥계정계안」을 통해 당시 옥계정계 구성원의 주요 성씨와 본관을 살펴보면, 慶州崔氏와 咸從魚氏가 주를 이루고 있고, 淸州慶氏・密城朴氏・恩津宋氏・星山全氏・晋州柳氏・昌寧曺氏・安東權氏・義城金氏의 비중이 높아 이들 가문이 옥계정계를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옥계정계는 일종의 洞契로 향촌 내 지배질서 체제 강화와 신분 간 또는 일족 간 결속력 강화를 목적으로 옥계동 일대의 사족들이 결성한 조직이다. 이러한 동계는 조선후기 재지사족이 중심이 되어 洞里 별로 널리 시행되고 있었다. 1786년에 작성된 본 동안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입록되었던 역대 계원 명단을 망라하고 있어 동계의 운영 세력의 파악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료이다.
『鳳山鄕誌』, 박문목, 慶尙南道 陜川郡 鳳山面,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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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陜川댐水沒誌』, 慶尙南道, 慶尙南道, 1988
『조선후기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민음사, 1990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