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상남도합천군인 삼가현 일대에서 시행된 동계(洞稧)의 발문(跋文)으로 1631년 삼가(三嘉) 출신의 유학자 임진부(林眞怤)가 작성
林谷集 地林谷先生文集 卷之五 跋 洞案跋林谷先生文集 卷之五 十三
天 : 卷1 詩, 卷2 詩
地 : 卷3 詩, 卷4 書, 卷5 序․記․跋․說, 卷6 雜著․祭文, 卷7 碣銘․行狀․傳
人 : 卷8 附錄[내용 및 특징]
지금의 경상남도합천군인 삼가현(三嘉縣) 일대에서 시행되었던 동계(洞稧)의 발문(跋文)으로 1631년 이 지역의 유학자 임진부(林眞怤)가 작성하였다. 발문은 자신이 발문을 작성하게 된 경위, 계원(契員)들에게 당부하는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먼저 발문에는 노파(蘆坡) 이선생(李先生)이 기해년(己亥年) 쌍수지회(雙樹之會)에서 난리가 끝난 후 동안(洞案)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부형(父兄)과 종족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노파 이선생은 임진부의 스승인 이흘(李屹)이다. 『노파선생문집(蘆坡先生文集)』의 연보(年譜)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피난 갔다가 난이 끝난 1599년 가을에 고향으로 되돌아 왔고, 동중(洞中) 사람들과 더불어 쌍수정(雙樹亭)에서 동계(洞稧)를 새로 고치고 서문을 작성했다고 나타나 있다. 임난 후 이흘이 돌아온 곳은 삼가현대평리(大坪里)회향촌(回鄕村)으로 임진부는 이곳에서 이흘로부터 수학하였었다.
이어 발문에는 30년 이래로 동안의 종이가 오래되어 거칠어지고, 행서(行序)가 착잡(錯雜)해져 보기가 민망했는데, 때마침 금년 봄에 한 두 부로(父老), 그리고 박창용(朴昌龍)과 이흘의 아들인 이심일(李審一)이 유사(有司)가 되어 동안을 새롭게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유사가 찾아와 소매에서 황권(黃卷), 즉 동안 1부(部)를 꺼내어 발문을 청하였는데, 장황(粧䌙)과 주묵(朱墨)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가히 볼만할 정도로 새롭게 개서(改書)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스승이 서문을 작성하여 서로 강신(講信)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규목(規目)을 완성했기 때문에 발문을 거절하였으나, 부득이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하는(着足於畵蛇)’ 잘못을 감수하고 발문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은 발문에 따르면, 우리 고을은 산천이 수려한 곳이나 인재가 드러나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다. 그간 삼가에서는 노흠(盧欽), 이희생(李喜生), 이흘, 이회일(李會一), 이양일(李養一), 이간(李衎)의 조카 이경세(李經世), 박천우(朴天祐), 박수인(朴守仁), 박천정(朴天禎), 박서귀(朴瑞龜), 홍혼(洪混) 등의 인물이 나왔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일동(一洞)에서 크게 드러나는 자가 많이 나오길 바라며, 지금 이후로 성현의 글을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조맹이 귀하게 여긴 것(趙孟之所貴)’을 바라지 않게 될 것이라 하면서 발문을 마치고 있다.
임진부가 동안의 발문을 쓴 시기는 1631년으로 여겨진다. 임진부의 문집인 『임곡집(林谷集)』에 따르면 46세가 되는 1631년에 동계를 중수(重修)했다고 한다. 이때 동안을 정비하고, 서문을 작성해 붙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본 문집에 별도의 동안 서문이 없고, 발문만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작성한 것은 발문이며 작성 시기는 1631년이 된다. 그리고 본 발문에서 언급되어 있는 발문의 결성 시기와 실시 지역 및 성격에 대해서는 동계 관련 다른 자료가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동계가 일동 동민이 일정한 규약을 통해 형성한 인위적인 조직으로 ‘족계(族契)’ 또는 ‘동약(洞約)’으로 불리어졌고, 16세기 무렵에는 각 촌락마다의 실시가 확산되었던 만큼, 이때의 동계도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흘이 거주하고 있었던 삼가현대평리 일대에서 이흘의 족적기반을 바탕으로 시행되던 동계로 추측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료적 가치]
조선중기 향촌에서 실시되던 동계(洞稧)의 실시 양상을 추측 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16세기에 접어들면 기존에 촌락을 단위로 실시되던 각종 동계와 족계(族契) 등이 향촌의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추구하던 사림파(士林派)에 의해,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이 가미된 조선적 향약으로 변모해갔다. 1599년 이흘에 의해 서문이 작성되고, 1631년 그의 제자 임진부가 발문을 작성한 동계 역시 이러한 성격의 향약 조직으로 여겨진다. 실시 지역은 경상도삼가현 일대로 동계를 중수했던 이흘의 일족이 주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동안의 발문이 작성된 1631년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인해 삼가현 사족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시기로 당시 이곳 사족들의 활동 양상을 추측해 볼 수 있다.
『林谷先生文集』, 林眞怤, 1894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 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民音社, 1990
『蘆坡先生文集』, 李屹, 景仁文化社, 1997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