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년 경상도함안군에서 重修된 鄕案의 序文으로 李瀞이 작성
茅村先生文集茅村先生文集 卷之二 序 咸安鄕案重修序茅村先生文集 卷之二 十九
1책 : 序, 目錄, 卷1 賦・詩, 卷2 書・祭文・序・雜著・家狀
2책 : 卷3 附錄, 卷4 附錄, 卷5 附錄
[내용 및 특징]
조선중기 경상도함안군에서 鄕案을 重修할 때 작성된 序文이다. 향안은 재지사족들의 자치운영 조직인 留鄕所 品官의 명단이다. 향안에는 지역 내에서 명망 있는 사족들만이 입록될 수 있었다. 경상도함안에서도 조선전기부터 향안이 작성되었으며, 당대의 명망 있는 사족들이 입록되었었다. 함안향안은 『咸州鄕案』이란 제목으로 1939년과 1996년에 만들어진 것이 전해지고 있어, 함안지역 재지사족들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다. 서문은 1603년 李瀞이 昌原大都護府使로 있을 때 작성한 것으로, 이정의 문집인 『茅村先生文集』과 『咸州鄕案』에 수록되어 있다.
서문에는 향안이 중수되는 전말이 언급되어 있다. 먼저 함안향안이 한 번은 화재에 의해, 한 번은 임진왜란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실되었으며, 그래서 鄕老와 諸兄들이 향안을 새롭게 만들 것을 도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직후, 각 고을의 재지사족들은 전란으로 소실되어 버린 향안 重修에 전념하였었다. 이에 함안에서도 전란으로 소실되어 버린 향안의 중수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함안향안의 草案이 완성되자, 함안의 재지사족들은 그 草案을 檜山에서 簿領을 맞고 있던 이정에게 보여주고 서문을 부탁하였다. 이정은 曺植의 門人으로 임진왜란 때 倡義를 했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한 당대 함안 지역을 대표하던 사족이었다. 서문에는 초안이 만들어진 후, 함안의 座首였던 李蘷가 草案을 가지고 창원까지 와서 서문을 부탁했다고 나타나 있다. 초안을 살펴 본 이정은 초안에 함안의 여러 祖先들이 기재되어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고을의 기강을 바로 잡고 彛倫에 따를 것을 당부하였다.
한편, 서문의 말미에는 함안향안의 서문을 이정 이외에도 朴德孫과 李明怘가 작성했다고 나타나 있다. 박덕손은 16세기 전후 함안에서 활동한 재지사족인데, 당시 박덕손이 향안의 서문을 작성했다고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5세기 후반 내지 16세기 초반 이전에 함안향안이 만들어졌음을 추정 할 수 있다. 이명호의 서문은 이정과 마찬가지로 1603년 함안향안이 중수될 때 작성된 것으로 현재 『함주향안』과 이명호의 문집인 『梅竹軒集』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임진왜란 직후 경상도함안 지역 재지사족들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임진왜란 직후 전란으로 鄕案이 소실된 각 고을의 재지사족들은 향안의 復舊와 重修에 주력하게 되는데, 함안에서도 그러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당시 재지사족들은 향안 중수를 바탕으로, 전란으로 동요하고 있는 향촌 내 지배질서를 견고히 하며 사족 간 결속력을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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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