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族의 결속력 강화를 위해 결성된 族契의 序文으로, 일제시대 때 활약했던 慶尙南道密陽 출신의 유학자 李炳憙가 작성
省軒先生文集 卷之七省軒先生文集 卷之十二 宗約序省軒先生文集 卷十二 二
一 : 目錄, 卷1 詩
二 : 卷2 書, 卷3 書
三 : 卷4 書, 卷5 書
四 : 卷6 書, 卷7 書
五 : 卷8 書, 卷9 書
六 : 卷10 雜著, 卷11 雜著
七 : 卷12序·記·跋·箴銘·上樑文, 卷13 祝文·告由文·祭文
八 : 卷14 祭文·哀辭誄文·告詞, 卷15 碑銘·墓表·墓誌銘·墓碣銘
九 : 卷16 行狀·遺事, 卷17 附錄
[내용 및 특징]
宗約은 一族을 대상으로 시행되던 鄕約으로, 그들 간 결속력 강화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보통 종약에서 논의되는 내용으로는 先塋의 수호, 宗會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儀禮에 대한 규약, 후손 교육과 관련된 문제, 일족 간 相扶相助를 위한 공동기금 운영, 조상 追崇 사업, 족보를 비롯한 각종 文籍의 간행 등이 있다. 일제시대 때 유학자 李炳憙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宗約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가진 조직으로, 관련 자료가 부족하여 시행 양상과 운영상의 성격을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밀양 지역에 거주하던 驪州李氏 일족이 그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병희가 종약을 결성하면서 작성한 序文에는 종약 시행의 의의와 목적 등이 언급되어 있다. 먼저 종약 결성의 궁극적인 목표가 友睦의 義를 돈독히 하고, 勸戒의 道를 거듭하는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 향약의 유래와 유구한 역사를 나열하였고, 이러한 향약을 지금에 와서 一族 단위로 시행하는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여기서 향약의 유래는 周나라 때부터 찾고 있다. 주나라 盛時에 大司徒가 있어 나라의 교화를 담당하였는데, 매 해 正月에 象魏하여 比閭族黨州鄕에서 相保, 相愛, 相救, 相賙했다고 한다. 그리고 三物로 교화하고 八刑으로 규찰하였으며, 매월의 孟에 돌아가며 讀法함으로써 이를 거듭하였다. 또 연말에는 善行과 惡行의 籍을 검토한 까닭에, 위로는 가르침이 융성해지고 아래로는 풍속이 아름다워져 民들의 교화가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道가 없어져 가르침이 해이해지고, 禮가 무너져 풍속이 문란해졌으나 이를 바로잡고 이끌 가르침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뜻있는 인사들이 옛적의 가르침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藍田의 呂氏鄕約이라 했다. 즉 여씨향약의 四大綱領인 德業相勸은 三物의 가르침이며, 過失相規는 八刑의 금기이며, 禮俗相交와 患難相恤은 또한 鄕黨州閭에서 相保, 相賙하던 遺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朱子 대에 이르러서는 呂氏의 향약을 增補하였으니 三代의 隆化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이르러서는 金宗直이 이를 행하였으며, 우리 고장에서는 鄭逑와 崔興遠 등이 행하였으니, 비록 벽지에서만 실시된 것이나 그 뜻은 옛적과 같다고 하였다.
이어 우리 一族에서 藍田과 考亭의 향약에 증손을 가하여 宗約을 만들었으니, 종약의 사람들이 이를 잘 준수하여 후손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서문을 마치고 있다.
[자료적 가치]
한 지역의 一族을 대상으로 실시되던 宗約의 시행 추이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후기부터 재지사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약화되자, 그들 간의 결속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족 간에 이루어지는 각종 사업의 확장으로, 이는 조선후기 문중의식의 성장과 맞물려서 이루어졌다. 종약 결성은 20세기 이후에도 그 전통이 계승되어 더욱 활성화되었는데, 密陽 출신의 유학자 李炳憙의 宗約 결성도 그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驪州世稿 省軒集』, 李炳憙, 正進文化社, 1977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 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民音社, 1990
『退老里誌』, 李佑成 編, 정진문화사, 2003
李愼成,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2007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