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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修契帖序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2+KSM-WC.0000.2771-20100731.Y10401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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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문집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계문서
작성주체 박승동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형태사항 크기: 28.8 X 19.7
판본: 목활자본
장정: 선장
수량: 19권 8책
판식: 四周單邊, 半廓 20.3x16.1 cm, 有界, 10行20字,注雙行, 上下內向四瓣黑魚尾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안내정보

김인길의 학행을 경모하여 만든 진수계의 서문으로 박승동이 지음.
박승동이 지은 것으로 석성 김인길(石醒 金寅吉)의 학행(學行)을 경모하여 만든 진수계(晋修契)의 서문이다. 이 서문은 김인길의 나이 80세이 지은 것으로 봐서 1921년 내지 1922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석성은 한평생을 학문과 선행을 닦는데 바쳤으며, 이런 모습이 만년에 그를 선비들 중의 일절(一節)로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선비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들었으며, 그의 독실한 모습을 경모하여 진수(晋修)라 이름하는 계(契)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학숙을 짓고 엄격한 시험을 거쳐서 생도들을 뽑았다. 또한 스스로 규칙을 정하여 지켰는데, 계의 모임 자리에서는 공손히 읍(揖)을 하며, 나이에 따라 술을 마시고, 시(詩)와 부(賦) 등을 듣고 익히는 것이다.
嶺南鄕約資料集成, 오세창 외,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7.
渼江集, 朴昇東, 跋: 乙丑[1925]...尹按
이병훈

상세정보

石醒 金寅吉의 學行을 경모하여 만든 晋修契의 서문
渼江集渼江集 卷之十 序 渼江集 卷十 三十七
卷1 詩, 卷2 詩·辭, 卷3~7 書, 卷8 雜著 卷9 雜著, 卷10 序, 卷11~12 記, 卷13 跋銘箴贊箋 卷14 上梁文 卷15 祭文 哀辭 卷16 神道碑銘 墓表 墓碣銘 墓誌銘 墓誌 卷17 行狀 行錄 卷18 傳 卷19 附錄 行狀 墓碣銘 跋
내용 및 특징
박승동石醒 金寅吉(1842~?)을 敬慕하여 지은 晋修契의 序文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5살 차이로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공통점이 있다. 박승동달성군에 거주하였으며, 김인길상주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만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문의 내용 중에 박승동김인길에 대하여 흥미를 가질 만한 많은 소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것은 김인길의 독실한 학행에 대한 것과 많은 선비들이 그의 문하에 운집한다는 것이었다. 이 晋修契가 지어진 것은 1842년에 태어났던 김인길의 나이가 八耋(80세)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보아 1921년 내지 그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문을 보면 晋修契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즉, 晋은 나아간다는 의미이며, 修는 학당에 나아가 이미 공부하고 있는 儒學을 잘 키운다는 것이다. 즉 晋修란 유학을 꾸준히 공부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계가 진수계인 것이다. 실제로 진수계가 만들어진 것은 김인길이 평생을 독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공경하여 그의 문하에 모여든 제자들이 만든 계이다. 그의 집안은 누대로 名望있는 집안이었으며, 그의 학문 또한 매우 심오하였다. 그는 계곡으로 흘러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살았는데 그의 선행을 알고 짐을 싸서 공부하러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이 늘어서서 탄식하는 소리를 없애기 위하여 學塾을 지었다. 학숙에 모여든 선비들은 엄격한 시험과정을 거쳤으며 또한 모든 생도들이 많이 옮겨 다니는 것을 경계하였다. 이 생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기 위해 하나의 계를 만들었는데, 이를 晋修契라고 하였다. 이 계의 취지는 크게 세 가지인데, 天命과 聖言 그리고 時王之制를 敬畏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를 행함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아니며, 가장 좋은 것은 義라는 것이다. 이어서 네 가지 규칙이 있는데, 契會의 자리에서는 공손히 揖을 하며, 나이순대로 술을 마시고, 詩賦 등을 듣고 익히는 것이다. 옛말에 嘉會라는 것은 禮에 어긋남이 없어야 족하다고 하였다. 그러한 즉 가르침의 도리는 풍속을 교화하는 것이며, 義와 禮는 밖으로 드러내는 방법인 것이다. 박승동은 김인길과 관련한 소문을 들었는데 그의 본받을 만한 말과 행동을 듣고는 그의 문하에 사람들이 들어간 자들이 바깥의 유혹에 이끌려 편안함을 쫒아 다른 길로 미혹되었다는 것이다. 학숙의 제자들 중 누구도 晋修로써 儒學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名儒에게 의탁하여 공부하기를 근면하고 또한 독실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성취만을 바라니 거짓된 것이다. 塾師인 上舍翁은 우직하여서 만년에 이르러서야 사람을 사귀었으며, 학행을 닦는데 태만하지 않았기에 늙어서 鴻匠이 되었다. 그의 학문이 樸實하여 머리에 짐을 지고 그 實함을 얻기 위하여 그곳에 찾아왔는데, 혹여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바에 미치지 못하고 자신만이 조금 알고 있다면, 다른 이들을 교화시키지 못하고 번번히 마음을 괴롭혔을 것이지만, 끝까지 궁구하여 통하게 되었다. 그러한 후에 이미 80세에 이르렀다. 그의 근면하고 독실함이 이와 같이 한결 같았다. 그에게 배우려고 운집한 자들의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虛實이 오가며 연이어 상접한 것이었다. 만약 쇠퇴하고 문란한 것을 바로잡지 않고 마음대로 둔다면 그것은 이는 홀로 현명한 자라는 것이 능히 이와 같을 것이다. 원하옵건대 모든 선비들이 현인에게 바라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바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진실로 피곤함을 잊고 요점만을 가려서 주해와 글귀만을 나눠 晋修의 요점으로서 읽도록 하였다. 先學 金寅吉은 일생토록 부지런하고 독실하였으며, 이로 인해 나이가 들어 ‘一節’이라 불렸다. 그렇기에 일절은 곧 ‘晋修’인 것이다. 결국 이 진수계는 김인길이 평생토록 학문 수양과 善을 행함에 게을리 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였기에 그런 모습을 존경하여 후학들이 만든 것이다.
자료적 가치
嶺南鄕約資料集成, 오세창 외,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7.
渼江集, 朴昇東, 跋: 乙丑[1925]...尹按
이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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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修契帖序
晋修契帖序
或問於渼江子曰契號晋修者何義焉修契始於晋
代故聲美而引之歟曰否晋者進也黌堂晋修斷斷
是儒教事奚踵乎王謝之風流爲哉石醒金上舍
世文學學邃爲已遯跡㴱山峽俗甚渝鮮有觀善閒
負笈者其心走作類多同安鍾聲惟是之懼築塾
而集群彥撞鍾而嚴課程又誡諸生之能遷者合修
一契所謂晋修契是也是契也有趣旨三言大槩是
畏天命畏聖言畏時王之制是豈非人道行爲之最
宜者而古語云行而宜之之謂義者是也又有條規
四事契會之席拱揖也序飮也聽講與賦詩之類而
古語云嘉會足以合禮者是也然則教授之道化俗
之風義與禮之外復有何術乎以余之侗聞風而起
興况乎入其門日聞其嘉言善行者安有引於外誘
而從佗歧之惑歟塾中弟子孰不知晋修之爲儒者
事然託名儒業不爲勤且篤焉而望其成就妄也塾
上舍翁愚之晩交而得知其行善不怠之老鴻匠
也其學樸實頭負荷得實地上踐履來其或人未及
知己所獨知之際有纖毫未化者存輒勞神極究洞
然後已八耋勤篤固如是是以學者雲集不辭其勞
而虛來實往踵相接矣若非矯揉頹俗爲已任者安
能若是其獨賢乎哉惟願諸彥希賢而期之以國紀
也則其於劬經之際愼勿虛勞於摘拾箋註分截句
讀爲晋修之要先學上舍翁之勤勤篤實爲一生着
力至老一節則其於晋修乎何有以是爲晋修契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