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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계를 칭송하는 시첩(詩帖), 수호계록서(修好稧錄叙),경차서상공운(敬次徐相公韻)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XI.0000.4717-20090831.Y09404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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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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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시문류-시
내용분류: 교육/문화-문학/저술-운서
작성주체 권장하, 이형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18.5 X 16
수량: 1책
소장정보 원소장처: 봉화 유곡 안동권씨 충재종택 /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안내정보

우향계를 칭송하는 시첩(詩帖), 수호계록서(修好稧錄叙),경차서상공운(敬次徐相公韻)
1865년 집회에는 4개 문중의 후손 45명이 모여서, 세호계를 수호계(修好稧)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매년 문중별로 돌아가며 모임을 가지기로 하였는데, 13명의 가문이 인연을 맺어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음을 찬양하는 시를 이형수(李亨秀), 권장하(權章夏), 권정하(權靖夏), 권익하(權翊夏), 권재명(權載明) 등이 지었으며, 권장하(權章夏)는 수호계록을 지어서 수호계의 결성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그 대략은 처음 13명의 선조들로 시작된 우향계가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본의를 잃지 않고 진솔회, 세호계를 거쳐 수호계에 이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이 수호계는 과실상규, 덕업상권, 환난상구 등의 수개의 약조가 모두 잘 이어져왔으며, 지금의 사람들이 수호해야 할 것은 충신(忠信)임을 강조하고 모두 이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였다.
남민수

상세정보

우향계를 칭송하는 詩와 수호계의 결성과정을 기록한 글, 서거정이 우향계를 칭송한 글에 대한 次韻
내용 및 특징
우향계은 李增(고성이씨)이 안동으로 낙향하여, 1478년에 학덕있는 안동의 선비 12명(안동권씨 3명·흥해배씨 4명·영양남씨 4명·안강노씨 1명)과 함께 조직한 것이다. 이 우향계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족의 후예들이 안동출신 사족들과 연대하여 결속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자 한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후손들에 의하여 여러 명칭으로 이어졌다. 이들 13인이 우향계를 조직한 뒤, 이증의 아들 李浤이 그의 아우, 매부 및 다른 회원의 손자, 사위 등 15명과 함께 ‘眞率會’를 조직하였으며, 이굉의 서자 李側이 아버지의 碑陰記에 진솔회를 결성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이 진솔회가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진솔회원인 이굉의 신도비에 의하면 1513~1516년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진솔회에 이어서 1702년 10월 28일에는 우향계의 후손들 중 안동권씨 10명, 고성이씨 1명, 흥해배씨 1명이 연명하여 11월 10일에 계회를 개최함을 알리는 回文을 돌렸다. 헸여갠과 11월 10일에 60여 명에 이르는 계원들이 우향계와 진솔회의 계승을 표방하며 천등산봉정사에 모여 世好稧로 계의 명칭을 변경하고 총 9개조의 규약을 의결하여 정하였다. 1703년에 작성된 世好稧案에는 진솔회의 모임과 관련해 의결된 9개조의 규약과 당 연집회에 참석하였던 87명의 명단이 나오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들을 성씨별로 분류하면, 안동권씨 57명, 영양남씨 7명, 고성이씨 5명, 흥해배씨 5명, 청주정씨 3명, 안동김씨 1명, 전주류씨 3명이 있다. 이중 전주류씨는 안동권씨의 외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1865년에 와서 세호계는 시대적여 화에 맞춰 새롭게 정비되었다. 처음 계가 만들어져 수백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 계회가 폐할 위기에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옛날의 성세를 찾기 위하여 새롭게 음력 5월에 길일을 정하여 모임을 갖고자 한다고 하였다. 헸여갠과 1865년 5월 초1일의 집회에는 처음의 5개 문중 가운데 안동권씨 24명, 흥해배씨 3명, 고성이씨 12명, 영양남씨 6명 등의 후손 45명이 모였다. 이들은 계의 명칭을 修好稧로 변경하고 매년 문중별로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다.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하여 李亨秀, 權章夏, 權靖夏, 權翊夏, 權載明 등의 찬시가 있으며, 권장 한다였다.록을 지어서 였다. 헸여갠과 연알려주고 있다. 헸여대략은 처음 13명의 선조들로 시작된 우향계가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헸여본의를 잃지 않고 진솔회, 세호계를 거쳐 였다.에 이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였다.한다과실상규, 덕업상권, 환난상하여등의 수 헸약조가 모두 잘 이어져왔으며, 지금 헸사람들이 였다해야 할 것은 忠信임을 강조하고 모두 이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료적 가치
‘友鄕稧帖’은 당초 ‘우향계축’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승한 ‘진솔회'와 ’세호계‘ 및 ’수호계‘까지 400여 년간 당초 회원 13명의 내외후손들이 그때 그때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확대 재결성하고 모임 때마다 회원들의 송시첩을 잘 정리해 놓은 책자로서 1478년에 작성된 우향계가 어떻게 계승· 발전해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조선시대 계회의 변천사례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충재종택, 『友鄕契軸』(보물 제896-1호) / 안동민속박물관,『友鄕稧案』, 시도유형문화재 제327호.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7.
『安東의 契』, 安東民俗博物館 編, 安東民俗博物館, 2006
1차 : 이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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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계를 칭송하는 시첩(詩帖), 수호계록서(修好稧錄叙),경차서상공운(敬次徐相公韻)
詩帖 李亨秀
友鄕古家諸兄爲修世存約會於禪房而僕癃廢不
能赴奉玩圖帖感慕陳迹玆成一律耄及之言然不足
焉諸賢俯和幷希斤正
連峯對起衆仙翁遺像恭睦古盡中野服班荆交語
洽村醪盈斝旅酬同盍簪深義觀羲卦罰座浮文陋晋獵永
世雲仍推舊契光塵赫赫感余衷
謹次 權章夏
珍重東城霽谷翁作詩寄意來山中曠懷四百年之久講誼十三
族與同錦牒藏傳成化物靑編歌詠永嘉風吾鄕善士宜文勉
乃祖家聲默誘衷
權靖夏
友鄕高會十三翁1007蹟傳來繡幅中夐溯春秋今緬邈申修
契好乃僉同佳辰正値天中節眞率還如洛下風大老有詩先獲
意詠歎不覺起余衷
權翊夏
成化年間耉造翁一鄕斯友一鄕中至今傳者交游美當日諸公志道同宜
續燈山留勝踐盍謀樽酒講遺風蒼顏白髮扶携地雅謔淸談揔素衷
權載明
先契吾鄕碩德翁十三銜諱一綃中追成勝會詢謀共緬憶光塵感慨同洛
社香山傳故事汙樽野蔌挹餘風如今四姓殷勤地少一盧家各說衷
修好稧錄叙 權章夏
修好稧者友鄕之四傳也友鄕始於成化戊戌十三世祖太宰
公與一時名流剏成焉凡五姓十三員以品紗尺許間以朱幷下
方列叙官諱父銜及姓貫甚詳上題四佳徐相公長篇七言
詩十五句有奇署以印章又別以繢畫摹寫之至於湖山臺榭
之勝歷歷在眼前十三家各弆一本爲雲仍寶玩繼以十二世祖
議政公爲眞率會六代祖荷塘公之世又有世好稧盖眞率追
友鄕本意而世好講眞率舊誼也是爲吾鄕可書之故事而
廢而不講已百餘年矣今年春東城李氏道村族中諸老
首發修復之論輪通各家後孫以五月初吉約會于天燈之僧
舍其流移在外鄕未及叅者三族九家之趂會者四十五人更書
名單如例命之以修好者續修友鄕眞率之世好也約旣成且罷
有諗于衆曰吾祖十三公德業風流之輝映當世姑勿說子孫之居
是鄕而江山第宅田畝丘壠之世守者族戚昏友禮俗交遊之從
事者幾四百年能勿替乃祖家法以至今日則世德之根深福澤之
綿遠有如此豈不盛矣乎吾輩之繼述無忝不亶爲文酒讌遽之
資而己也竊念友鄕之名取一鄕斯友之誼而如一國天下之善士亦自有所居
之鄕則居其鄕友其善便可幷擬乎國與天下然一隅東方天下不
必言當時名公巨卿俱以一國之善士稱以友鄕亦謙挹之美意而能
今後人誦其詩讀其書以寓尙論之地則此又友鄕餘意之所在
也孔子曰十室之邑必有忠信顧今風猷曠邈俗習漓薄如所謂
過失相規德業相勸禍難相救數箇成約是忠信事其於今人
之修好者亦庶幾焉盍各勉之哉余曰好矣遂叙而書之
敬次徐相公韻
嶺南自古文獻地鄒魯之稱最海東我生長老太平世嘐
然起感光民風衣冠名族永嘉萃永嘉自是府之雄淸朝世
祿總藎臣文章鉅公多偉人縱有田園休退跡不是遺野甘沉
淪一鄕善士斯鄕友顯晦出處同天民生綃分作十三幅四佳先
生詩以陳至今已經四百秋宛似親睹當日遊綸巾野服婆娑
影風猷物色何休休中間眞率世好會我輩亦已雲仍行江山
第宅守祖業世世相從不離鄕續會約日中和天山榭高樓集郡
賢白酒香蔬資醉飽鶴髮鳩笻到後先及今鄕里無事日(以下省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