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경주향교의 도유사이진택이 대성전과 동재, 서재의 낡은 시설을 수리한 일과 각 곳의 향교위토 중에서 환퇴 받아야 할 전답에 대해 기록한 재임록
내용 및 특징
1854년 1월, 대성전의 地衣가 낡아서 眞席 8립을 준비하였고, 동·서재의 돗자리가 낡아서 葛席 20립을 준비하여 庫房에 맡아두었다. 外神門의 자물쇠와 지도리의 쇠가 낡아서 견고하지 않으므로 자물쇠 철2개·지도리쇠 3개를 殿守僕處(청소지기 방)에 준비해 두었다. 5월, 명륜당 서쪽 화장실이 비바람에 손상되어 무너질 듯하므로 나무를 받치고 葛席 6립을 설치하여 고쳤다. 7월, 대성전 서쪽의 서까래가 낡고 기와가 깨어졌기 때문에 새로 기와를 대어 수리하였다. 동·서재 齋舍廳板이 퇴락하여 거의 텅빈 것처럼 되었으므로, 송판 18립을 덧대어 수리하였다. 8월 경주부윤김양근이 쌀 2斛을 경주향교에 출급하였다. 동년 8월, 향교의 전답은 放賣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여러 가지 사유로 방매하는 경우가 있어, 관청에 품의하였더니 차후로는 방매한지 10년을 넘지 않은 땅은 본래 가격과 상관없이 향교에 되돌려 주도록 하고, 방매한지 5년이 지난 땅은 쌀값에 준하여 가격을 치르고 환퇴하도록 했다. 경주향교도유사이진택이 『고왕록』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경주향교가 환퇴받아야 하는 위토는 다음과 같다.
경주부 서쪽 興輪員 57번답 59負 6束 20斗落
西岳員 갑9답 7負 4束 9斗落
靈妙員 6斗落
普門員 生69번畓 11負 6束 5斗落
月城員 3斗落
紅門員 超51畓 10負 9束, 52畓 2負 3束, 53畓 2負 9束, 53畓 2負 9束, 54畓 6負 7束 7斗落
旺井洞員 3斗落
牙洞員 坐字묵밭
45田 1結納, 44田 3負 1束, 45田 3負 1束, 46田 5負 6束, 61斗落, 60田 21負 8束
良三鳳洞員 2斗落
幸乙員 49田 11負 5束
八助員 87畓 3負 3束 3斗落
道只員 幕27畓 4負 8束, 32畓 3負 3斗落
자료적 가치
19세기 중반 향교의 전답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새로 늘어나는 경우는 드물고, 향교의 지출이 증가함에 따라 여러 가지 명목으로 방매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향교의 齋任들이 자의로 방매하는 폐단까지 나타났다. 이의 해결책으로 이미 방매한 토지라 하더라도 10년 가까이 된 것은 本價없이 향교의 원래 위토로 환퇴하고, 5년 정도 지난 것은 쌀값을 쳐준 뒤에 향교에 환퇴하라는 행정명령이 나타나게 되었다. 경주향교의 『고왕록』에 기록된 환퇴받아야 할 위토의 긴 명단을 보면, 이 시기 향교의 열악한 재정적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