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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癸卯年) 경주향교(慶州鄕校) 임사록(任司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XG.1843.4713-20090831.Y09101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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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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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손세익, 이로면, 한용곤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작성시기 1843
형태사항 크기: 34 X 40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책 37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경주향교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문중소개

안내정보

1843년(癸卯年) 경주향교(慶州鄕校) 임사록(任司錄)
도유사손세익 등이 계묘년 경주향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여 기록하였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성전과 동재 및 서재의 지의(地衣)를 바꾸었다. 제사용 포대가 낡아서 바꾸었으며, 이전 첨성대원의 토지와 청송댁이 만들어 놓은 집을 너무 싸게 팔았다는 논란이 일어난 사실 및 효헌왕후가 승하하여 10일간 복상(服喪)을 입었다는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남민수

상세정보

1843년(계묘년)에 도유사손세익 등이 대성전의 地衣를 바꾼 일과 享祀에 소요되는 물품들을 준비한 사실 및 효현왕후의 승하 등의 내용을 기록한 재임록(임사록).
癸卯二月日
내용 및 특징
계묘년경주향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은 도유사손세익 등이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우선 2월에는 대성전의 地衣가 낡고 오래되어 춘추의 향사의례에 쓰기 어려울 정도이므로 우선 葛席 40립을 얻어 享祀時에 임시적으로 쓰도록 조처하였다. 또 제사용의 쌀을 담는 포대가 낡았으므로 면포 큰 마대 4건을 준비하였다. 향례에 사용되는 소반도 부족하였으므로 20좌를 새로 갖추어 놓았다. 청송댁이 만든 집과 첨성원의 6두락지를 4냥을 더 받기로 하고 인왕원의 땅 7두락지와 바꾼 것은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鄕論이 일어났다. 8월 25일에 효헌왕후가 승하하여 9월 1일부터 10일간 服喪을 입었다. 이 문서 역시 대성전의 여러 가지 미비한 물품, 바닥의 돗자리 교체 등,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다. 역시 향교에서 향사의식은 교육기능과 더불어 아주 중요한 기능이었임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중기는 향교의 재정문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이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사의식은 향교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중요한 제사의 물품 마련조차 관청의 상당한 보조 없이는 그 운영이 어려웠던 것이다. 한편으로 향교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도유사의 권위도 많이 실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향교위답의 처리문제로 향론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재임들의 권위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한편 경주향교에서도 효헌왕후의 국상을 치뤘다는 기록 또한 상당히 흥미로운 기록이라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3년(癸卯年) 경주향교(慶州鄕校) 임사록(任司錄)
癸卯二月 日
聖殿地衣年久朽敗故報 官改備十八立焉
倫堂東西齋室地衣年久朽敗故葦席肆拾立
享禮時急爲先權用耳
都有司 辛宅奎
齋任 李魯冕
庫有司 韓用坤
癸卯八月 日
聖殿祭米大帒傷廢故報官則綿布大帒四
件新備焉
享禮時所用盤子不足故貳拾坐自校中 新
備▣于洞中
本校位田瞻星坮員陸斗落只靑松宅建屋次
仁旺員七斗落只添価肆兩錢相換矣自今秋鄕
論駿發文爲還退之擧而齋任遞歸未遂而▣于新齋任
都有司 孫世翼
掌議 任榮
庫任 韓用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