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1월과 2월에 경주향교에서 도유사손성첨이 대성전 내 신문의 지도리 나무를 수리한 일과 영묘원 등의 전답을 방매하고 옥산서원과 서악서원에 부조금을 낸 사실 등을 기록한 재임록(임사록).
己亥正月
내용 및 특징
경주향교의 운영을 책임 맡고 있는 校任들이 기해년에 일어난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1839년 정월에는 대성전 내신문의 지도리 나무가 꺾어졌기 때문에 이를 관가에 알리고 쇠못을 얻어 수리하였다. 또 송단에 심었던 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넘어졌으므로 馬桶을 만들었다. 2월에는 靈廟員과 沃野員의 전답을 방매한 돈 61냥중에서, 옥산서원의 중수에 드는 돈의 부조금으로 30냥을 원조하였고, 서원중수의 일로 西岳書院에서 회의가 열리자, 이의 비용조로 13냥 3전을 부조하였다.
본 기해년의 임사록 기록을 살펴보면, 대성전 수리와 같은 일상적 향교운영을 기록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옥산서원의 重修 논의가 일어나자 이를 직접 지원했을 뿐 아니라, 중수 논의를 위해 서악서원에서 모임이 있을 때도 향회에 대해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였다.//
자료적 가치
여타의 향교나 서원을 부조하는 일은 향교의 주요 일상업무중 하나였다. 그러나 옥산서원의 중수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가 위해 여러 곳의 전답을 팔아야만 했다는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서 경주향교의 재정적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또 19세기 향교와 서원간에 서로 경제적으로 한 협력관계가 있었음을 방증해주는 문서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