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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己丑年) 경주향교 임사록(任司錄)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XG.1829.4713-20090831.Y091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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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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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최숙, 손세현, 강덕환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작성시기 1829
형태사항 크기: 34 X 40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책 37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경주향교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문중소개

안내정보

1829년(己丑年) 경주향교 임사록(任司錄)
1829년 경주향교의 교임(校任)들이 경주향교의 운영현황을 기록한 일지 성격의 성책 고문서이다. 주로 경주향교에서 없어진 물품을 관청의 보조를 받아 새로 마련하거나 무너진 향교건물의 일부를 수리하고 이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829년경주향교에서 향교운영의 상황을 연월일순으로 기록한 향교운영 일지.
己丑五月十三日
己丑五月十三日, 六月 日, 八月 日
내용 및 특징
경주향교의 운영을 책임진 교임(校任)들이 경주향교의 운영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일지형식으로 기록하였다. 1829년 음력 5월 13일에는 예전 사용했던 검은 색 허리띠(黑帶) 1건․나막신(木靴) 1건․벼루(硯) 1 좌 등을 윗방 벽장에 두었으나 한 밤중에 도둑이 침입하여 자물쇠를 부수고 훔쳐 갔으므로 물건들을 새로 갖추어 놓았음을 기록하였다. 6월 아무개 날의 기록을 보면, 대성전(大成殿) 서쪽의 처마 부연(婦椽)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관청에 알리고 버팀기둥 2주를 구해 버틸 수 있도록 수리하였으며, 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의 바람막이 차일이 낡아서 손상되었으므로 이를 관청에 알리고 갈대방석 43립과 쇠못 130개를 얻어서 수리하여 비바람을 막게 했다는 것이다. 8월 아무개 날의 기록을 보면, 큰 제사 때 헌관(獻官)이 착용하는 금관(金冠) 1건과 각대(角帶) 1건, 나막신 3켤레(巨里) 등에 대해 관청에 알리고 갖추게 하였다. 이상, 『임사록』 기축년 기록의 주요 내용들을 살펴본 바와 같이 19세기의 향교 역시 관청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향교에서 소요되는 제사용품․건물의 보수와 유지 등, 향교의 제반사항에 대해서 관청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는 관학(官學)으로서의 향교가 서원(書院)에 밀려 점차 그 교육기능을 잃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향촌사회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따라서 지방의 수령들도 향교나 지방 양반가문의 도움 없이 독자적 행정을 펴기가 매우 어려웠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임사록』의 다른 기록을 보면, 심지어 적절한 도유사(都有司)감이 없을 때에는 경주부윤(慶州府尹)이 임시로 도유사를 겸임하기도 했는데, 이로 미루어 지방의 행정관들이 향교를 교화의 한 방편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19세기의 향교에 보존되어 있는 고문서, 특히 향안(鄕案)이나 선생안(先生案)을 비롯, 향약의 실시사정을 전하고 있는 동계(洞契)라든가 향교 교임들의 명단과 운영 현황을 알 수 있는 임사록(任司錄), 각 종 절목(節目) 등은 조선후기의 향촌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19세기 이후 경제력으로 부유하게 된 일부 하층 계급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양반의 신분으로 상승하려고 하는 등, 신분제의 변천과정과 긴밀히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신분제 변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원문 텍스트

1829년(己丑年) 경주향교 임사록(任司錄)
己丑五月十三日
昔歸時所着黑帶壹件木靴壹件硯壹坐留置上房
壁藏矣夜半盜碎鎖鑰偸去故幷爲新備焉
都有司幼學崔琡
齋任孫世顯
庫任姜德煥
六月日
聖殿西簷婦椽已至傾頹故報官求撑柱二株
修補東西廡風遮朽傷故報官得葦席肆拾
參立鐵釘肆百參拾介仍爲修葺以庇風雨焉
八月日
大享時獻官所着金冠壹件角帶壹件木靴
參巨里報官改備焉
都有司幼學崔琡
齋任孫世顯
庫任姜德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