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경주군수가 慶州鄕校直員에게 이미 지난 5월5일 향교재산관리에 대한 경상도서기관의 통첩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탁지부 결정에 의해 향교소속의 전답은 이제 국유지취급을 받지 않으며, 따라서 세금이 부과된다는 내용이 담긴 경주군발급의 248호 통첩.
二四八號
내용 및 특징
〈各公文編纂綴〉이라는 제목으로 경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문건 중 14번째 고문서이다. 문건의 첫머리에는 二四八號라는 문건번호가 지정되어 있어 서구의 공문서 양식에 맞추어 쓰고자 했던 대한제국 시기 공문서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주요내용은 경주군수가 경주향교直員에게 5월 5일 이미 송부한 서기관의 통첩내용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는 향교소유의 전답이 국유지가 아니므로 結稅를 부과하겠다는 度支部의 결정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주지하다시피 원래 향교소유의 전답은 국유재산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아 조세의 부과가 면제되고 있었는데, 統監府 체제하의 學部와 탁지부 등은 제멋대로 향교소유의 전답을 처리하여 공사립학교의 재원으로 전용하는가 하면, 이것을 각종 기부행위에 충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韓日合邦 직전에는 이처럼 향교소유의 전답에 대해 다시 세금을 부과하여 일반전답과 마찬가지로 취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으니, 이는 향교의 교육적기능에 대해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자료적 가치
韓日合邦을 앞둔 1910년 통감부의 향교정책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근대교육기관을 증설하면서, 계몽이라는 명목으로 皇民化 교육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향교의 재산을 근대교육기관의 재원마련을 위해 야금야금 잠식하다가, 향교를 학부에 이관하여, 학부에서 향교재산을 관리하게 하다가 전용하면서 마침내 향교소유의 전답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결정마저 내리고 있다. 韓日合邦 이후에는 서울의 성균관이 경학원으로 변모한 것처럼, 각지의 향교도 總督府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본 공문서는 바로 이 시기 경주향교는 정상적인 운영이 매우 곤란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