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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주향교(慶州鄕校) 첩유(帖諭)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XC.1908.4713-20090831.Y091010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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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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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통유
내용분류: 정치/행정-명령-통유
작성주체 이기, 이태영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작성시기 1908
형태사항 크기: 20 X 29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경주향교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1 문중소개

안내정보

1908년 경주향교(慶州鄕校) 첩유(帖諭)
1908예안군 도산면에 소재한 퇴계종택(退溪宗宅)이 화재로 손실되자 경상도관찰사의 친서를 받은 경주군수(慶州郡守)이기(李琦)가 퇴계종택의 중건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주향교에 보낸 첩유와 취지서
남민수

상세정보

1908년禮安郡 陶山面의 退溪宗宅이 화재로 소실되자, 경주군수李琦가 의연금 모금을 위해 발송한 첩유와 취지서
帖諭
내용 및 특징
慶州鄕校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중에 ‘各公文編纂綴’이라는 제목으로 소장되어 오던 大韓帝國 시기의 공문서 중의 하나이다.隆熙2년(1908)은 乙巳條約 이후, 일본제국주의자들이 大韓帝國의 완전한 합병을 위해 통감부체제를 유지하면서 나라의 명맥을 완전히 끊고자 광분하던 시기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당시 儒林과 地方鄕校의 동향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이는 儒林과 地方鄕校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본 문건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문건은 慶州郡守李琦1908년 4월 15일에 경주향교掌議李泰榮에게 발송한 첩유이며, 두 번째 문건은 첩유에 첨부되어 있는 募金趣旨書이다. 먼저 첩유의 내용을 살펴보면, 퇴계의 宗宅에 심한 화재가 일어나서 宗宅을 重建해야 할 필요가 생겼으므로 경주관내의 有志人士에게 의연금모금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첨부되어 있는 취지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東方朱子로 추앙되는 退溪先生의 고택에서 화재가 일어나 重建의 필요성이 생겼으므로 政府의 각 大臣들이 三百圜 이라는 의연금을 출연하였다. 고택의 중건문제는 尊聖衛道의 德業을 성취하는 큰일이므로 각 鄕校와 儒生들은 약간의 義捐金이라도 모금하여 古宅重建에 一助하라는 내용이다.
자료적 가치
일본제국주의자들은 韓日合邦이후에 成均館의 명칭을 經學院으로 바꾸고 이를總督이 관장하는 직속기구로 둘 정도로, 일제는 儒林의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위 첩유와 취지서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명목상으로는 東方의 朱子退溪先生의 宗宅건립을 위해서라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쓰고 있으나 의연금의 실제모금 및 그 처리에 과한 일체의 사무를 일본인 서기관 塩谷一太郞이 맡는다는 구절을 보면, 그들의 의연금모금의 진정한 취지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통감부 시기의 향교에 대한 일제의 여러가지 정책은 아직까지 그리 상세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본 문건은 이 시기 鄕校의 어려운 사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1차 집필자: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8년 경주향교(慶州鄕校) 첩유(帖諭)
帖諭
卽到付 觀察使公函內開敬啓者禮安郡陶山 退溪李先生
祠宇重建助役捐義金募集趣旨書一度送呈오니照
亮시고境內有志人士의게도亦爲一軆諒悉케하심을
敬要이신바玆에翻帖며該趣旨書亦爲翻謄粘後
니須即輪示各門야俾各諒悉케할사
隆熙二年四月十五日
郡守李 琦
鄕校掌議李泰榮 座下
趣旨書
賢哲은萬邦師範이라久而彌央고道學은百世宗敎라孰不
矜式이리오東方夫子退溪李先生古宅遺址는卽今之闕里考
亭也라慕其賢에至於尊其廟하고悅其風에至於式其閏하
더니不幸劫燼告災에芬躅이爲墟야重憲之敎는縱未隨烈
燄而俱泯이나象德之宇를莫不知空烟而興感일 亟圖形
止하야自道報于內閣이러니政府諸大臣이先爲捐義야以三百
圜으로助其役而重建舊制케니彛性所慕에萬口一辭라近
而縉紳章甫와遠而友邦隣好에疇不欽崇奮勵야樂相其
得哉아玆用發起公佈오니伏願 僉君子之能知尊賢而
衛道者共捐若干金야一新古祠야無墜先生之風케務
望홈
隆熙二年三月 日
發起人員
李忠求 朴海齡
中相春太郞 鄭鎭台
松下直美 鄭在學
川上常郞 李錫珍
氏野德太郞 李章雨
塩川一太郞 鄭載東
嶋田文之助 李悳求
白南埈 文업
崔鉉達 張相轍
蔡憲植 鄭在悳
權錫禹 金愚根
徐鳳琦 鄭來郁

一捐義金은慶北觀察道書記官塩川一太郞으로交付할事
但遠隔地方에셔郵便換의로該氏의게送交事
一捐義金은新聞에廣告할事
重建事務에形便을隨時야捐義諸氏의게通奇事
內閣大臣捐義金
內閣總理大臣李完用五十圜
內部大臣任善準 五十圜
度部大臣高永喜 五十圜
軍部大臣李秉武 五十圜
法部大臣趙重應 五十圜
學部大臣李載崑 五十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