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79년 신재수(申在壽) 강세계(講世契) 서문(序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WC.1879.4772-20090831.Y094020100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문집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계문서
작성주체 신재수, 강세계
작성지역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작성시기 1879
형태사항 크기: 30 X 20
판본: 목활자본
장정: 선장
수량: 4권 2책
판식: 半郭 : 16×19, 四周雙邊, 有界, 10行18字, 內向二葉花紋魚尾 上下白口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안내정보

1879년 신재수(申在壽) 강세계(講世契) 서문(序文)
1879년 지금의 경상북도군위군부계면 일대에서 결성된 강세계(講世契)의 서문으로, 지역 출신의 유학자 신재수(申在壽)가 작성하였다. 서문에 따르면 강세계는 부계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흥양이씨(興陽李氏), 고성이씨(固城李氏), 평산신씨(平山申氏) 세 양반가문 간의 결속력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조선후기 양반들은 지역 내 지위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강세계와 같은 각종 계(契)를 결성하여, 상호 간의 결속력 강화를 도모해 나갔다.
이광우

상세정보

1879慶尙道軍威 출신의 유학자 申在壽가 작성한 講世契의 序文으로, 강세계는 군위 지역에 世居하던 興陽李氏,固城李氏,平山申氏 세 가문이 선조 때부터 이어오던 世誼를 돈독히 하기 위해 결성한 계
反求齋集 乾反求齋遺集 卷之三 序 講世契序反求齋遺集 卷之八 十
乾 : 卷1 詩, 卷2 書,祭文,告由文 / 坤 : 卷3 丘墓文,遺事,上樑文,序,記,箴,銘,論,說, 卷4 雜著,附錄
내용 및 특징
1879申在壽가 講世契 결성 시, 작성한 서문이다. 講世契는 수 백년 동안 지금의 軍威郡缶溪面 일대에 거주하던 興陽李氏,固城李氏,平山申氏 세 가문이 선조 때부터 이어오던 世誼를 돈독히 하기 위하여 조직한 契이다. 서문에는 講世契가 결성되는 연원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군위군 일대에 거주한 흥양이씨,고성이씨,평산신씨 세 가문은 오랫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여 凋殘함을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조의 淸白한 풍속을 이어 받아, 학업을 서로 권장하고 吉凶事 때 相扶하며, 수백년 동안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에 점차 가세가 貧寒해져 각기 생애를 도모하는 바람에 세 가문이 서로 대대로 지켜오던 우의를 다하지 못할까 염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 가문이 모여 계를 조직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先誼를 후세에 알리고 학업을 서로 권하고, 禮俗을 이룰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한편, 이 서문에서는 근래 인심이 옛날 풍속과 같이 않아 향촌 내, 鄕校,書塾,書院에 출입하는 鄕士들이 討索과 飮酒를 즐기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이 계에 속하는 세 집안의 후손들은 이러한 流俗에 젖지 말고, 오로지 책 읽기와 농사일을 돌보는데 힘쓸 것을 마지막으로 유시하며 講世契의 결성 연유를 밝히고 있다.
자료적 가치
講世契는 19세기 후반 군위군부계면 일대에 거주하던 재지사족들이 결성한 일종의 洞契이다. 동계가 18~19세기 오랫동안 관로에 나아가지 못한 영남의 재지사족들이 가문들끼리 결속력을 다지며, 지역 내에서의 위치를 유지하는 방안으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眞檀學報』 58, 「조선후기 향촌사회통제책(鄕村社會統制策)의 위기 -동계(洞契)의 성격변화를 중심으로-」, 金仁杰, 震檀學會, 1984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軍威文化遺蹟誌』, 軍威文化院, 大譜社, 1992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정진영, 한길사, 1998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9년 신재수(申在壽) 강세계(講世契) 서문(序文)
講世契序己卯【四月與興陽李氏固
城李氏修契講世誼

夫契者何以言夫相交之道也蓋自天降生民
有五典之叙而朋友之信其一也斷金臭蘭爲
同人之交麗澤講習爲道義之交鄕田同井爲
出入之友子孫能世守其信者蓋鮮矣唐宗之
於魏謩尊卑有序而臨朝而穪之孔融之於李
膺歷代已遠而臨門而通之至於我東方士大
夫尤以世好爲重師友淵源之地或有唱酬之
詩往復之簡而爲子姓者講而明之修而好之
無異於族親姻戚則其義顧不重歟惟我三姓
之入此鄕者盖數百年簪纓不繼而尙不肯奔
競世路猶有先世淸白之風而皆未免凋殘之
嘆其亦理歟何幸世接芳隣學則聯業遊則共
方吉凶相扶出入相友以姻戚則朱陳也以誼
分則管鮑也由來數百載祖而父子而孫不失
其相信相愛之道則向所謂師友唱酬之交盖
兼之矣世級漸降貧塞益甚各自急於圖生不
有以講修世好安知後世能推其義不失其世
守之信乎玆以三姓齊會爛商修契所以講先
誼垂後昆重學業成禮俗使藍田之約仙居之
俗不獨專美於古者也矧又吾鄕曰校曰塾曰
書院皆鄕士出入之所而挽近以來人心不古
鄕俗漸偸纔一出脚以討索酒食爲能事乾沒
錢財爲長技吾儕亦此鄕人也幾何其不淪於
流俗乎不必以出入爲能事惟讀書課農勉修
本分是所望於吾儕也是爲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