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성주 지역의 유학자인 李震相이 작성한 高靈 會輔契 契帖의 序文으로, 會輔契는 지역 유림 간에 학문을 교유하고 강학하기 위해 결성된 學契임
寒洲集 十七寒洲集 卷之三十三 序 會輔契帖序寒洲集 卷三十三 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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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및 특징
19세기 후반 성주지역의 유학자였던 李震相이 작성한 會輔契帖의 序文이다. 會輔契는 유림들 간의 학문교류와 강학을 목적으로 高靈에서 조직된 일종의 學契이다. 李震相은 말년에 會輔契의 講長職을 맡기도 했었다. 서문에는 회보계가 가지는 의의를 『論語』를 비롯한 여러 유교 경전의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契의 결성 경위와 서문을 작성하게 된 연유 및 당부사항이 나타나 있다.
서문은 옛날 어떤 자가 본인에게 ‘以文會友以友輔仁(글을 가지고 벗을 모으고, 벗으로 仁을 돕는다)’라는 『논어』의 구절이 聖人의 말이 아니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에 대해 李震相은 역시 『논어』에 나오는 여러 문구를 들며, 질문한 자의 학문이 얕음을 지적하면서 본 會輔契에서 강학하는 학문이 문장을 뽐내는 詞章에 있지 않고, 仁을 求하는 학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회보계의 결성 경위가 언급되어 있다. 서문에 따르면, 李震相이 高靈鍾山齋에 갔는데, 會中에 많은 文學之士들이 모였으며, 酒禮를 마치고 諸生이 학문을 토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齋中의 少友들이 一帖을 가지고 와 보여주며 뜻을 같이 하자고 하니, 契를 맺고 成案을 하였다. 이로써 장차 鹿洞의 遺規를 쫓고, 鵝湖의 講席을 설치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어, 본 계의 결성 목적이 교화와 강학에 있음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로써 옛 사람의 爲己之學에 힘쓰니, 이름을 會輔契라 名하게 되었다고 한다. 契의 節目은 本務에 충실할 것으로 敦篤하는 규정이 있으니, 將釋回增美로 文이 되고, 善한 일을 권하고 허물을 규제함으로써 仁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글재주의 長短을 경쟁하고 盃酒에 오만해져, 본 계가 一曝十塞 되는 근심은 없어야 하며, 성실이 자신을 성찰해서 買櫝還珠의 면하지 못하는 폐가 없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후반 결성되었던 學契의 특성과 성주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던 李震相의 학문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會輔契는 20세기를 전후해서 활동한 李震相의 문인들이 대거 참여했었던 學契로, 이시기 이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학문관의 일면목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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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