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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룡(都右龍) 사농계(士農契) 서문(序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WC.0000.4772-20090831.Y094020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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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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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문집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계문서
작성주체 도우룡, 사농계
작성지역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형태사항 크기: 31 X 20
판본: 목활자본
장정: 선장
수량: 8권 4책
판식: 半郭 : 17×23, 四周單邊, 有界, 10行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 上下白口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2800
현소장처: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2800

안내정보

도우룡(都右龍) 사농계(士農契) 서문(序文)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 일어나자, 향촌 내 양반들과 양민들 간의 결속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경상도의흥현 일대에서 결성된 사농계(士農契)의 서문이다.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각 고을의 양반들은 그들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여러 형태의 계(契)를 결성하여 양반들끼리는 결속하는 반면, 계를 통해 양민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통제하려 했었다. 사농계 역시 그러한 목적 하에 결성되었으며, 서문은 지역의 유학자 도우룡(都右龍)이 작성하였다.
이광우

상세정보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고 외래문물이 들어오는 가운데 전통적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慶尙道義興에서 결성된 士農契의 序文으로 都右龍이 작성
一悔軒集一悔軒集 卷之五 序 士農契序一悔軒集 卷之五 三
元 : 卷1 詩, 卷2 書 / 亨 : 卷3 書 / 利 : 卷4 雜著, 卷5 序,記,說,論, 識跋, 卷6 哀辭,祝文,祭文,墓表, 卷7 附錄 / 貞 : 卷8 附錄
내용 및 특징
의흥현의 학자인 都右龍이 작성한 士農契의 서문이다. 서문에는 士農契가 결성되는 명분과 목적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우선 서문의 첫머리에는 四民 가운데, 선비와 농민이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계층임을 고대 중국 五帝의 일화, 詩經洪範九疇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어 이들이 있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고 인륜을 지켜 나갈 수 있다며,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邪說이 橫流하여 正學이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의 상황을 통탄하고 있다. 이에 향촌에서 뜻을 같이 하는 자들과 더불어 먼저 條約을 定하고, 節目을 만들어 선비와 농민이 본의에 힘쓰게 한다는 취지의 士農契를 결성하게 되었으며, 부족하나마 마지못해 서문을 쓰게 되었다고 士農契의 결성 목적과 서문의 작성 동기를 밝히고 있다.
한편, 都右龍의 「行狀」에 의하면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인한 동학의 발흥과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인해 正學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이를 경계하기 위해 士農契를 조직하여 異服과 異言을 하는 자들의 왕래를 금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보아 여기서 都右龍이 언급한 邪說이란 東學과 외국문물인 듯하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후반 의흥현 일대 재지사족들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다. 아울러 1894년 갑오농민전쟁, 동학의 유행, 외국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때 영남지방 유림들이 契를 결성함으로써 공동 대응해 나가는 양상을 확인 할 수 있다.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향약연구』, 향촌사회사연구회, 민음사, 1990
『一悔軒文集 一』, 都右龍, 景仁文化社, 1996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정진영, 한길사, 1998
『軍威마을誌』, 군위군청,군위문화원, 2007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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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도우룡(都右龍) 사농계(士農契) 서문(序文)
士農契序
古有四民一日士二日農而工商即其次也夫士者
國之元氣農者天下之大本也非士無以爲教非農
不得爲食故虞舜之治勤於命契命稷之政驗
於躬稼敷文迄于商之招俊周之艱稼無不以士農
爲先務則士農實生民之大關棙而有國之一大樞
紐也惟其士不自士治平之術由乎士農不自農公
私之養出乎農由此觀之以帝王之聖初非忽於彼
而篤於此也亦莫不由於斯而止於彼也然而葩經
三百稼穡爲本箕疇八政一曰爲食則當以農先於
士而必士先於農者其義何哉盖茹毛食實之世先
有倉皇造字之臺炎帝之耕始於太昊書契之後即
此而知士爲先農爲次而二者不可廢一亦可爲並
行相須者也其在治平猶尙如此况世降叔季寧可
少忽哉當今之時正學榛蕪邪說橫流有一種僞學
稱以道人一聲烏唶萬口蛙應毁滅孔氏之道抛棄
神農之業敺一世之人皆欲入其坑不知此學何學
是道何道若如彼類所爲人於背君遺親猶恐後而
蜂屯蟻聚以刼掠爲事此可謂學乎道乎若此不已
何人爲士何者爲農治平之術從何處出公私之養
從何所辦乎此不但止爲生民一時之蠱害必將至
於人類滅絕而後已豈可不大畏乎哉猗我聖上
軆周家造士之治法漢文耕籍之義累下綸綍敕之
以恩喩正之以刑法自方伯以不遵而行之規模嚴
正條約周密佇見天日之復明豈非民國之大幸耶
惟我同遂之人以秉彜同得之性齊聲出義先定條
約又成節目名其契曰士農盖彼類之成羣訛亂職
由於不務士農之致也若使其人士則士農則農奚
暇有異心爲亂哉士以教之農以食之先公而後私
則於爲國乎何有此所謂道不遠而在邇事不難而
爲易者也諸君强余以弁文辭不獲已畧叙以反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