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고 외래문물이 들어오는 가운데 전통적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慶尙道義興에서 결성된 士農契의 序文으로 都右龍이 작성
一悔軒集一悔軒集 卷之五 序 士農契序一悔軒集 卷之五 三
元 : 卷1 詩, 卷2 書 / 亨 : 卷3 書 / 利 : 卷4 雜著, 卷5 序,記,說,論, 識跋, 卷6 哀辭,祝文,祭文,墓表, 卷7 附錄 / 貞 : 卷8 附錄
내용 및 특징
의흥현의 학자인 都右龍이 작성한 士農契의 서문이다. 서문에는 士農契가 결성되는 명분과 목적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우선 서문의 첫머리에는 四民 가운데, 선비와 농민이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계층임을 고대 중국 五帝의 일화, 詩經 및 洪範九疇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어 이들이 있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고 인륜을 지켜 나갈 수 있다며,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邪說이 橫流하여 正學이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당시의 상황을 통탄하고 있다. 이에 향촌에서 뜻을 같이 하는 자들과 더불어 먼저 條約을 定하고, 節目을 만들어 선비와 농민이 본의에 힘쓰게 한다는 취지의 士農契를 결성하게 되었으며, 부족하나마 마지못해 서문을 쓰게 되었다고 士農契의 결성 목적과 서문의 작성 동기를 밝히고 있다.
한편, 都右龍의 「行狀」에 의하면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인한 동학의 발흥과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인해 正學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이를 경계하기 위해 士農契를 조직하여 異服과 異言을 하는 자들의 왕래를 금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보아 여기서 都右龍이 언급한 邪說이란 東學과 외국문물인 듯하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후반 의흥현 일대 재지사족들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다. 아울러 1894년 갑오농민전쟁, 동학의 유행, 외국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때 영남지방 유림들이 契를 결성함으로써 공동 대응해 나가는 양상을 확인 할 수 있다.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향약연구』, 향촌사회사연구회, 민음사, 1990
『一悔軒文集 一』, 都右龍, 景仁文化社, 1996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정진영, 한길사, 1998
『軍威마을誌』, 군위군청,군위문화원, 2007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