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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김충선(金忠善) 내외자손급동리인약조(內外子孫及洞里人約條)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WC.0000.2771-20090831.Y0940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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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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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문집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계문서
작성주체 김충선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형태사항 크기: 21.2 X 16
판본: 목활자본
장정: 四周單邊, 半廓
판식: 注雙行, 上下內鄕四瓣花紋黑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녹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현소장처: 대구 녹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안내정보

17세기 초 김충선(金忠善) 내외자손급동리인약조(內外子孫及洞里人約條)
임진왜란 당시 왜군으로 참전하였다가 조선의 문물을 사모하여 귀화한 김충선이 전란 이후에 향리에 은거하여 달성군 우록동의 동민들과 후손들을 대상으로 충효예의와 상부상조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만든 동계(洞契)이다.
남민수

상세정보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김충선이 향리로 돌아와 자손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보급시킨 향약의 약조문서.
내용 및 특징
본 향약의 동계는 임진왜란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자 慕夏堂金忠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부대의 일원으로 조선에 왔으나 예의의 나라를 흠모하여 조선에 귀화하고 왜군의 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후에는 북방의 영토를 방비하기 위해, 자원하여 북방을 10년 동안 지킨 바 있다. 공이 향리에 돌아와 작성한 문중 향약이 바로 본 문건이다. 본 문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金忠善은 자신이 만리타향에서 예의의 나라를 흠모하여 귀화하였으므로 자신의 후손들은 조상의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였다. 그 중 몇 가지의 약조만 소개해 본다. 1. 작은 일로 서로 다투거나 여자나 어린이의 전언을 전해 듣고 불화하거나 틈을 만들지 말라. 2. 양친에 대한 효도를 근본으로 하라. 3. 연소한 사람이 연장자를 경멸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라. 4. 관청에 납부하는 세금은 기일에 맞추어 내도록 하라. 5. 추수 등의 농사일은 모두 공동으로 도와서 시기를 놓치지 말라. 6. 도둑이 나타나면 마을 사람이 모두 공동으로 뒤쫓아 가서 잡으라. 7. 화재로 집을 잃은 이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힘을 모아 집을 마련해 주라.//
자료적 가치
모하당김충선은 나라에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으나 임금이 내린 사패지도 조정에 돌려주고 향리로 은둔하여 후손과 동민들의 교육에 힘썼다고 하며, 그 영향으로 인해 우록리는 선비의 마을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본 문서는 임란 이후 洞契의 조항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하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세기 초 김충선(金忠善) 내외자손급동리인약조(內外子孫及洞里人約條)
內外子孫及同里人約條 一惟我托跡殊方孤寄萬里有子有孫成行眼前咨
爾內外男女子孫軆我遠來投托之意以敦睦爲
戒以忠孝爲主無負余平生之志事
一惟我子孫與他姓共井之人誼同至親情猶骨肉
勿以細事微故互相鬪閧勿以女子之言童稚之
傳遂成釁隙事
一孝於父母然後百行從之母論大小男女以孝親
爲本事
一惟此共井之人母以少凌長以賤凌貴母以强凌
弱以富凌貧母肆虐母故逸母使酒母博奕母相
爭事
一根於農桑母墜業棄職母至貧窮事
一凡於官納及還上應稅等節每以初定日畢納無
貽官家之憂事
一同井之人若有疾病憂患而至於失農之弊則勿
論上下一齊合力付種及除草秋穫等節俾無失
時事
一里中之人或有失火則各出盖草椽木以爲搆舍
助給事
一同里之人或有失物逢賊之事則勿論上下家家
人人各持麻繩一二把三稜杖齎糧追尋跟捕
限五日還歸事
一同里之人生子而觀其氣骨才禀文武間各其勸
奬期於成就事
一同里之人或無器機不能如意作農則有牛器機
者先爲借給俾無失時愆期事
一凡我子孫及同里之人冠婚喪祭之時無財不
能辦備則同里之人各出財力以爲賻助事
一同里之人若有與他里人相爭則勿爲偏黨以
義理辨其曲直是非以爲和解事
一每年春秋講會之時有司持此約條讀聽上下
人而其女子童稚則以釋讀聽事
一春講會則以花辰爲之秋講會則以楓節爲
之而講會時各持壺果以爲終日燕樂事
余乃海外覊旅之人孤寄殊方之蹤慕中夏禮
樂文物之盛借聖人一片寸壤之廛遺托子
孫自成一村間有他姓同里共井則必有敦睦
和融之風然後里可有仁厚之俗矣苟或不然
人各異心家各異論則吾所以慕夏投托之意
果安在哉玆以大槩約條列之于右以爲一里
中金石之典誠不負約條而一乃心力則衆心
成城日新又新矣外村之人誰敢侮之而其將
謂里仁爲美矣惟願吾內外子孫與他姓之共
井者克遵此丁寧之約條則庶幾有補於風
化之萬一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