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無怠里에 살았던 白雲 李華祥에게 수학한 鄕士들이 결성한 契의 서문
渼江集渼江集 卷之十 序渼江集 卷十 十四
卷1 詩, 卷2 詩·辭, 卷3~7 書, 卷8 雜著
卷9 雜著, 卷10 序, 卷11~12 記, 卷13 跋銘箴贊箋 卷14 上梁文卷15 祭文 哀辭 卷16 神道碑銘 墓表 墓碣銘 墓誌銘 墓誌 卷17 行狀 行錄 卷18 傳 卷19 附錄 行狀 墓碣銘 跋
내용 및 특징
이 계는 白雲 李華祥(1842~1915)이 죽은 후 그의 학문과 덕성을 기리기 위하여 그에게 수학한 鄕士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계이다. 이 계의 명칭은 이화상이 강학하던 곳이었던 백운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나눠진다. 첫째, 이화상의 생전 품행과 학문에 대한 설명 둘째, 계가 만들어진 이유와 박승동이 서문을 짓게 된 까닭을 적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화상의 성품과 학행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다. 그는 남들과 다투지 않고 항상 사람을 어질게 대함으로써 향인들이 그를 염모하였으며, 그 성품이 온후하며 후덕하였으며, 六藝에 밝았다. 문장이 정밀하고, 글을 잘 지어서 일찍이 進士가 되었다. 그의 학문하는 자세와 기개있는 말은 후진들에게 모범이자 지침이 되었으며,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 할 때는 얼굴을 온후하게 하며 바른 말이 아니면 듣거나 상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1915년에 이르러 이화상은 그의 강학처였던 백운정 내실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던 鄕士들이 계를 맺어 스승을 추모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박승동에게 그 계의 서문을 작성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화상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말과 어진 인품을 모든 향인들이 흠모하며, 그의 덕을 더욱 칭송하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 계첩서문은 이화상이 죽은 후인 1915년 4월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박승동과 이화상은 동년배이자 臨齋 徐贊奎(1825~1905)에게서 수학하였다. 1908년에는 擇窩 禹夏轍과 더불어 낙동정사에서 스승의 문집을 교열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가 백운정수계첩의 서문을 짓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嶺南鄕約資料集成』, 오세창 외,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7
『渼江集』, 朴昇東,
『白雲亭文集』, 李華祥, 具珽會 編, 徐建洙 校, 1927
이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