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세기초 서사원(徐思遠) 하동리사계약서(河東里社契約序)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WC.0000.2771-20090831.Y094010100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문집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계문서
작성주체 서사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형태사항 크기: 18 X 25
판본: 목판본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안내정보

17세기초 서사원(徐思遠)의 하동리사계약서(河東里社契約序)
17세기초 달성군 하동리에 살았던 서사원이 작성한 하동리 동계(洞契)의 서문이며, 임진왜란 이후 인구의 감소로 인해 리(里)와 여(閭)의 인구를 하나의 동(洞)으로 합치고, 동약에 소속된 사람은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상부상조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嶺南鄕約資料集成,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6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2
남민수

상세정보

17세기초 서사원이 작성한 달성군 하동리의 社契約序
河東里社契約序
내용 및 특징
17세기초 達成郡 河東里에 살았던 樂齋 徐思遠이 작성한 하동리 洞契의 서문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자는 우선 향약 동계의 연원을 멀리 중국 고대의 예악서인 《周禮》에서 찾고 있다. 즉 《주례》에 의하면 五家를 一比로, 五比를 一閭로 삼아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서로 돕고 돌보는 전통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또 《맹자》의 '등문공'편에도 우물을 같이 쓰는 이웃들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구절이 있으며, 이로 미루어 보면 洞約과 洞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미풍양속이 전해진지 오래 되었으나 임진왜란을 당하면서 사람과 물자의 손실이 매우 커서 하나의 縣 인구가 수십여 명을 넘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의 洞 인구는 몇 명을 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전래되는 향약을 그대로 실행함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존재하였다. 이에 서사원은 里와 閭의 인구를 모두 합쳐서 하나의 洞으로 삼고 一洞의 인구는 貴賤에 관계없이 모두 상부상조하며 지내자고 역설하였다. 본 "河東里社契約序"는 주자의 "朱子增損呂氏鄕約"의 조항을 대강 모방하여 규약을 정하였다고 하였으나 이 서문에는 구체적 조항에 대한 소개가 빠져 있다. 다만 社契 가입이전의 잘못은 큰 것이라도 반드시 버리고, 社契 가입 이후의 잘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반드시 기록한다 등의 구절로 미루어 전반적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의 향약은 金宗直趙光祖 등 재야사림파가 향촌에 대한 지배라는 목적과 禮敎의 보급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까닭에 적극 추진하다가 몇 차례의 士禍를 당하면서 그 보급이 일시 좌절된다. 그 후, 퇴계의 예안향약과 율곡의 해주향약을 통해 활발하게 향약의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임진왜란과 더불어 향약의 성격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하동리사계약서"는 임란 직후의 향약, 즉 洞約의 보급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이다.
嶺南鄕約資料集成,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鄕約資料集成, 1986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2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세기초 서사원(徐思遠) 하동리사계약서(河東里社契約序)
河東里社契約序
人之處世旣以生同一世爲幸則况生同一道一邑
者乎旣以生同一道一邑爲幸則况至於生一縣居
一里者乎昔者周禮大司徒令五家爲使之相保
五比爲使之相愛以至成里成鄕相賙相救無不
備至焉孟子之教滕文爲國也死徙無出鄕鄕隣同
井出入相友守望相助疾病相扶持一云云則古人之
於隣里鄕黨其情如何其義如何風淳俗朴自能信
能厚其無結契員明約信之事無足恠者世末俗偸
風澆化邈仁里德隣罕見於世標枝野鹿挽不可回
則聚比隣成里社在今世而存古道之美其可不相
勉勵於一洞之內乎而况辰巳以還人消物盡一縣
之人殆不滿數十一洞之居亦不過數三晨星落落
遼鶴寥寥有族親多財力能不資隣保之力者有幾
人哉若不結疎遠爲親密合里閭爲一洞以相扶相
勸則零丁孤苦踽踽凉凉其生也誰與爲歌其死也
誰與爲哭耶况至如勸之以德業䂓之以過失相期
以孝悌忠信相責以禮義廉恥以共爲絳縣之民以
同躋華胥之域其敢厚誣十室而不與之同心共願
也哉且人之有道也必能修睦於家而後能修睦於
隣里能修睦於隣里然後其爲人爲行可尙於鄕黨
邦國若不修於家睦於里與同里同社之人相追逐
共憂樂則其不與鳥獸同羣者鮮矣且與公私爲賤
名分雖懸而乾父坤母同胞幷生四海之人皆爲兄
爲弟則况同居於一洞一里之間者乎是豈可分貴
賤視楚越不與之同契約而共憂樂哉玆敢不計貴
賤合作一契合錄一冊歲時伏臘期與之講信修睦
死生吉凶亦與之同爲欣戚會集之日特別其聚所
而已若夫條約䂓範畧倣呂氏鄕約之文兼入今日
便宜之事一與洞員商量爲之條列于左或有後入
之人則隨願隨入不計遠近同心同德不分貴賤只
願成契之後凡我一契之人毋或怠始終之心毋或
貳死生之顧約前之過雖大必棄契後之善雖小必
錄將見枌楡之社孝悌興行十室之居忠信輩出美
俗成風薰陶漸染君子鄕鄭公鄕不獨專美於
孝悌里鳴珂里庶復見於今日則豈不美哉豈不盛
哉若或成契之後不念同契之切有違䂓約之戒當
面則輸心曲詡詡背面則爲凶悖悻悻因私挾憾小
嫌大怨其將至於敗羣不率者則亦不免擯黜于一
洞之內雖州里行乎哉昔惠〖慧〗遠結白蓮之社而只以
淸淨爲尙白樂天結香山之社而亦止爲遊賞之所
今豈可取法哉嗚呼干木隱而西河美李陵降而隴
西慚勝母有名而曾子不入才子八人而改名高陽
吾一洞契約之員可不勉哉可不戒哉思遠白首無
聞寡陋僻處亦今日鷄豚社一老翁耳花朝月夕每
思挽鬚之樂爭席之興而衰朽凉薄莫與之唱和爲
之愧歎者久矣今者前龍川守都叔丈昆仲罷官丁
憂乃反故里命與結契不勝幸甚樂與之同叅更爲
之序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