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월 18일 吳進承이 수신자의 집안 안부를 묻기 위해 한양조씨 옥천집안의 모모에게 보낸 편지
1933년 1월 18일 吳進承이 수신자의 집안 안부를 묻기 위해 한양조씨 옥천집안의 모모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당히 상투적인 방식으로 수신자의 안부를 물으며, 세초에 지내는 자신의 상황을 전하며 "적조하던 끝에 지난 섣달에 한번 뵈었으나 조밀하고 시끄러워 정겹게 회포를 풀 수가 없어, 그 서운하고 한스러움이 지금까지 이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이때에 건강은 새 복을 많이 받으셨고, 숙부님 형제분들이 節度를 잘 보중하시며, 서쪽 이웃의 尊老의 건강도 계속하여 岡陵함을 누리시는지요? 아울러 깊이 기원합니다. 저의 연로하신 어머니의 조섭은 해를 건너가며 건강이 좋지 않고, 맏며느리는 해산하여 또 딸 하나를 보탰으니 몹시 마음 졸이고 고민됩니다. 그리고 아내의 병이 4일 동안이나 혼미하게 아파, 전혀 새해의 재미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고 있다.
편지를 쓴 목적은 중반이후에 "『同苦錄』 에 이름 올리는 명목의 돈은 源述兄이 구전(口傳)한 것으로 霖山 고지기에게 推尋하였습니다. 그의 말은 귀댁에 보답하는 조목으로 삼아 전에 이미 다 헤아려 갚아 더 남은 것이 없다고 하니, 형세가 내 쪽에서 다시 독촉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전하오니 조속히 믿을 만한 인편을 찾아 부쳐 올려주시겠습니까? 간절히 고대할 뿐입니다."라고 간절한 부탁을 하고 있다. 이어서 다시 자신이 현재 지내고 있는 사정을 "竹谷의 우소에서 지내는 건강은 근자에 다른 별다른 탈이 없이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맺음하고 있다.
발신자에 관하여, 金秉宗(1871~1931)의 『秀山集』을 보면, 「答吳惠卿」에게 보내는 편지가 2통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1929년에 보냈고, 하나는 1930년에 보낸 것이다. 1929년에 보낸 편지에는 「答吳惠卿進承己巳」로 되어있다. 따라서 여기 발신자 吳進承과 동일 인물이라면 그의 자는 惠卿일 것이고, 여기 계유년은 193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