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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박종태(朴鍾泰)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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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종태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930
형태사항 크기: 22.8 X 40.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30년 박종태(朴鍾泰) 서간(書簡)
1930년 6월 21일에 영해 출신의 박종태영양 주곡의 옥천종택에 보낸 답장편지이다. 상대방과 숙부와 조카 및 벗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딸의 안부를 전하면서 자신이 지내는 곳이 비록 궁벽하지만 해산의 풍물은 한 번 감상할 만하니 조금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한 번 방문해 주기를 청하는 내용이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930년 6월 21일에 영해 출신의 朴鍾泰가 상대방과 숙부와 조카 및 벗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딸의 안부를 전하면서 한 번 방문해 주기를 청하며 영양 주곡의 옥천종택에 보낸 답장 편지
1930년 6월 21일에 영해 출신의 朴鍾泰(1887~1959)가 상대방과 숙부와 조카 및 벗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딸의 안부를 전하면서 한 번 방문해 주기를 청하며 영양 주곡의 옥천종택에 보낸 답장 편지이다.
먼저 초여름에 편지를 받고 기뻤으나 자신이 게을러서 아직까지 답장을 하지 못한 죄는 변명할 수 없다고 사죄하고, 장마철을 맞아 형제와 숙부 및 조카, 그리고 마을의 여러 벗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궁금해 하였다.
이어서 특별히 알릴만한 소식도 없이 그저 분주하게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한탄하면서 다만 노친께서 편안하고 못난 여식이 팔이 없어 다행일 뿐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자신이 지내는 곳이 비록 궁벽하지만 해산의 풍물은 한 번 감상할 만하니 조금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한번 방문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미리부터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발신자 박종태영해 출신으로 무안 박씨이다. 독립운동 관련 판결 자료에 의하면, 1919년 3월 18일 영해읍의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일제의 주요기관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이 일로 체포되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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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30년 박종태(朴鍾泰) 서간(書簡)

初夏獲拜惠訊。欣感曷已。顧今交通
之便。大異前日費一枚紙三個銅。則無虹橋之
斷。有鱗羽之憑。而第困疎懦。迄稽鳴謝。逋
慢之罪。實無以自文矣。謹請霖潦
棣床起居淸裕。日與諸益。唱酬於臺榭竹
樹間耶。猶庭氣韻萬護。令咸氏昆
季珍勝。邨內諸友。面面平善否。區區不任。勞禱
之忱。契弟。入近經歷。奔汨度了。無足奉聞於相
愛。虛負受中以生之責。浩歎柰何。惟耋候
免諐。劣嬌。亦無頉耳。弟之居。雖窮且僻。海
山風物。足以供一賞。而且匹馬單僮。是吾兄
容易底事。稍待凉生。一番動駕。如何。掃
榻預企耳。餘不宣。伏惟尊照。
庚午 六月 二十一日。契弟 朴鍾泰 謝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