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6월 21일에 영해 출신의 朴鍾泰가 상대방과 숙부와 조카 및 벗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딸의 안부를 전하면서 한 번 방문해 주기를 청하며 영양 주곡의 옥천종택에 보낸 답장 편지
1930년 6월 21일에 영해 출신의 朴鍾泰(1887~1959)가 상대방과 숙부와 조카 및 벗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딸의 안부를 전하면서 한 번 방문해 주기를 청하며 영양 주곡의 옥천종택에 보낸 답장 편지이다.
먼저 초여름에 편지를 받고 기뻤으나 자신이 게을러서 아직까지 답장을 하지 못한 죄는 변명할 수 없다고 사죄하고, 장마철을 맞아 형제와 숙부 및 조카, 그리고 마을의 여러 벗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궁금해 하였다.
이어서 특별히 알릴만한 소식도 없이 그저 분주하게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한탄하면서 다만 노친께서 편안하고 못난 여식이 팔이 없어 다행일 뿐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자신이 지내는 곳이 비록 궁벽하지만 해산의 풍물은 한 번 감상할 만하니 조금 서늘해지기를 기다려 한번 방문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미리부터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발신자 박종태는 영해 출신으로 무안 박씨이다. 독립운동 관련 판결 자료에 의하면, 1919년 3월 18일 영해읍의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일제의 주요기관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이 일로 체포되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