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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오석도(吳錫燾)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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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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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오석도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923
형태사항 크기: 24.4 X 5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3년 오석도(吳錫燾) 서간(書簡)
1923년 1월 19일에 외사촌 아우 오석도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옥천종택에 보내는 편지이다. 발신자의 늙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상대방 쪽에서 연이어 편지를 보내주어 매우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여러 가지 근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손자를 얻어 기쁘지만 안어른이 없어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간호하기 때문에 초칠이 지나기 전에는 몸을 빼내기가 힘든 상황이니 상대방이 언제 길을 떠나는지 인편으로 정확하게 알려 달라고 하였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923년 1월 19일에 외사촌 아우 吳錫燾가 산모인 며느리를 간호하느라 상대방의 행차가 다음달 10일 사이라면 만날 수 있지만 그 보다 이르면 보지 못할 것이라며 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옥천종택에 보낸 편지
1923년 1월 19일에 외사촌 아우 吳錫燾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옥천종택에 보내는 편지로, 산모인 며느리를 간호하느라 상대방의 행차가 다음달 10일 사이라면 만날 수 있지만 그 보다 이르면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발신자의 늙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상대방 쪽에서 연이어 편지를 보내어 죽은 자를 애도하고 산자를 위로하는 정의가 매우 두터워 매우 고마웠다고 하였다. 어느덧 해가 바뀐 지 19일이 지났는데, 형제간에 각각 떨어져 사는 나머지에 함께 모여 송구영신하고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서 크게 새 복을 받았으며, 집안 형께서는 수체의 섭양이 혹 지나간 추위에 손상을 입지는 않으시고, 새해맞이 음식은 큰 부족함이 없었으며, 혈기와 기력은 더욱 신의 도움을 받으시고, 아드님과 여러 종숙질도 모두 편안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계신지 물었다. 이어 그립고 또한 축원하는 마음 지극하다고 하였다.
朞年服을 입고 있는 본인은 곤란을 겪어온 것이 돌에 걸려 넘어져 가시나무에 쓰러질 뿐만 아닌데, 지금 또 관에 들어가는 것조차 보지 못하는 서글픈 감정을 전하였다. 백형의 건강도 때때로 좋지 못하고 남은 그 밖의 근심도 한둘이 아니니 매우 답답하다고 하였다. 오직 喪中의 아이는 근근이 지탱하고 일전에 손자를 얻었는데, 우선은 별 탈이 없으니 이것은 그런대로 즐거움이 될 만하다고 하였다.
殷老가 돌아올 시기는 언제인지 상대방에게 물었다. 새해에 날마다 가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으나 다만 진흙길을 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 당내에 緦麻服 입는 상을 당해 겨우 초종을 마치고 출발하여 鼎足에 이르렀는데, 매우 추워 지팡이를 돌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안어른이 없는 집안에 시아버지가 산모인 며느리를 간호하기 때문에 초칠이 지나기 전에는 몸을 빼내기가 힘든데, 만약 상대방의 행차가 다음달 10일 사이라면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으나 만약 이보다 앞당겨진다면 필경 보지 못하고 멀리 이별할 것 같다고 하였다.
이어 시국에 대한 의견을 적었는데, 암울한 세상에 팔을 걷어붙이고 호기를 부리는 신진들은 지극한 정으로 견주어 볼 때, 길가는 사람과 다름없이 여기고 예의를 버린 것을 영웅호걸로 받드니, 이는 밤낮으로 탄식할 바라고 하였다. 마지막에는 다시 상대방이 언제 길을 떠나는지 인편으로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하였다.
발신자 오석도가 쓴 편지의 ‘계해년’을 ‘1923년’으로 추정한 이유는 金秉宗(1871~1931)의 『秀山集』에 1927김병종오석도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고, 李中均(1861~1933)의 『東田集』에도 1928이중균오석도에게 쓴 편지가 있으며, 1931안동 校洞道會所 통문에 오석도가 연명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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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23년 오석도(吳錫燾) 서간(書簡)

注谷 僉座下。入納。
芋洞李生等。謹候狀。 謹封。

謹拜謝狀上。
省式。私門禍故。老婦竟不起疾。顧念一體胖合。情
義不輕。而遽隔幽明。荒凉冷酸。無以爲懷。迺者。
左垂聯訊。所以哀死悼生者。情意周摯。苟非至情
無間之地。寧有是耶。拜領感荷。曷以云喩。居然歲
換。而新蓂。復落四葉矣。伏詢
幔幃離索之餘。合床餞迓。而倫樂。怡怡。大膺新休。
內家兄主。壽體攝養。無或欠和於過去寒威。迎新廚
供。不至大段匱乏。而榮衛氣力。益享天神之佑。允君諸
從叔姪。亦皆穩侍否。仰溸且祝之至。表弟朞服人。由來耐困
困。不啻捆石據蒺。而今又入宮不見。不祥之甚也。柰何。
且伯候。時日致愆。餘外憂虞。不一而足。悶人悶人。惟棘兒。僅
支。日前。擧得雄孫。而姑無見頉。是可爲聊。殷老復
路之期。果在那間。開正後。日擬往叙。而不但泥海難
犯。且遭堂內緦戚。纔畢初終。發至鼎足。適是十
日之栗烈也。行旅曰當返。吾亦自量難强。畢竟回
筇。未幾日。家故如右。蓋閫內無長之家。救護産
婦。只一渠舅。過七之前。萬無抽出之勢。其行若在
來月旬間。則可能復圖。若進於此。則竟似不見。
而遠別。悵缺何言。顧玆黑窣人界。彼新進之攘譬使氣
氣者。視至情。無異路人。棄禮義。推以英豪。是固夙
夜所憤歎。而竊自誓心撑氣。雖欲盡分於素衷。然手
分所未逮。則勿論。而以身可行者。或天魔之。事牽之。倘不爲俗流之所笑耶。發程早晩。
因便的寄之。如何。餘。擾惱。不備謝禮。
癸亥 元月 十九日。表第〖弟〗 朞服人
吳錫燾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