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5월 8일, 李東春이 李炳俊에게 노송정 대묘 기제사의 제수를 영덕 관아에서 돕겠다고 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13년 5월 8일, 三從姪 李東春이 宗家의 叔行이 되는 인사, 곧 李炳俊에게 노송정 대묘의 기제사에 영덕 관아에 봉직하는 서리에게서 제수 약간을 돕겠다고 하더라 하고, 제수를 마련하기 위하여 장을 볼 때 참작하라고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청량산 12봉이 눈에 삼삼한데, 한번 산문을 나서자마자 이전처럼 속인이 되었으니 진실로 신선의 인연은 운수가 있는 모양이라 하고, 헤어진 후 며칠이 지났는데, 녹음이 좋은 이 때 정양하는 생활은 만중하고 가족들의 근황도 고루 복이 많은지를 물었다.
자신은 지난번 그대로이니 말씀드릴 일이 없는데, 앉아서 이 좋은 계절을 보내며 아무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홀로 두어 잔의 술을 마시다 그만 두곤 한다 하며, 자신의 외롭고 변변치 않은 생애를 이로부터 알 수가 있으니 크게 탄식한들 미칠 수 없다고 하였다.
大廟의 기제사가 다가오니 盈德 書吏로부터 약간의 제수를 돕겠다는 기별이 있었는데, 鮑 한 마리와 고기 다섯 斤을 제사에 임시하여 사서 보내겠다고 하더라 하고, 물품은 약소하나 뜻이 가상하다고 하였다. 제사 드는 날 어김없이 받들어 올릴 터이니, 장 보실 때 이 점을 참작하시라고 하며 말을 맺었다.
발신인 李東春은 신원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계유년(1933) 陶山書院 講廳重修時日記에 李忠鎬 등과 함께 前任有司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활동 시기를 1900년대 초중반으로 짐작할 수 있고, 동시대 류영희의 일기에 ‘剡村 李東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거주지는 섬마[島村]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신인을 노송정 종가의 숙항이라 하였으니 李炳俊(1870~1919)으로 추정된다. 자는 正武이며, 아버지는 燦和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