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5월 27일, 金道和가 李燦和에게 曾孫壻의 학업을 지도할 계획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11년 5월 27일, 金道和가 李燦和에게 아들의 상을 당한 후의 안부를 전하고, 자신의 집에 손자를 머물러두고 공부시킬 작정임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오랜 세의와 새 인연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막혀 서운하고 궁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던 중에 允兄이 찾아오고 거기다 상대의 편지까지 전하니 위로되는 마음을 필설로 다할 수 없다 하고, 천중절 즈음 상대의 기운은 진승하며 식구들도 고루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로가 된다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나이가 들어도 죽지 못하고 또 봄 사이에 아들이 죽는 참척을 당하니 슬프고 고민스러운 마음을 말할 수 없다 하고 오직 손자가 잘 부지하고 증손녀 또한 잘 지내니 멀리서 도와주시는 덕분임을 알겠다고 하였다. 彧郞[상대의 손자이자 자신에게는 증손서가 되는 사람]은 단정하고 빼어난 모양이 큰일을 할 수 있을 듯한데, 우선 자신에게 머물러두고 조용히 학업을 권할 계획이라 하고, 그가 즐겨 들을지 모르겠다며 우습다고 하였다.
편지 내용에서 允兄이라 한 사람은 상대의 아들 李炳俊며 彧郞은 상대의 손자 李範敎이다.
발신인 金道和(1825~1912)는 본관은 義城, 자는 達民, 호는 拓菴이다. 柳致明의 문인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을미년에 明成皇后가 일제에 의해 살해되자 도내에 倡義 通文을 보내고, 1896년 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손자 李範敎가 김도화의 손자 獻周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양가가 사돈의 관계가 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