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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904.4717-20180630.01652570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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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도화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4
형태사항 크기: 18.8 X 37.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4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1904년 4월 5일 김도화가 어떤 이에게 보낸 편지로, 아내를 잃은 자신의 근황과 상주가 된 아이들이 잘 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선선생의 묘갈에 대하여 글에 대한 감식을 가진 문내 사람들에게 이의가 없었고,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를 경우 다 뜯어고쳐야 할 듯하다며 나중에 오늘과 같은 의견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여기 보내는 경달 형의 편지를 함께 펴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904년 4월 5일 金道和가 某人에게 先先生의 묘갈에 대하여 글에 대한 감식을 가진 문내 사람들에게 이의가 없었고,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를 경우 다 뜯어고쳐야 할 듯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904년 4월 5일 金道和가 某人에게 先先生의 묘갈에 대하여 글에 대한 감식을 가진 문내 사람들에게 이의가 없었고,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를 경우 다 뜯어고쳐야 할 듯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오래 소식을 듣지 못하여 그립던 차에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보내주니 매우 감사하다고 하며, 더구나 이 4월에 상대의 공부하는 생활과 여러분의 근황이 평안함을 알게 되니 매우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白首가 된 나이에 아내를 잃었는데, 저승으로 가는 데도 차례가 있으니 한탄스럽다고 하고, 오직 상주가 된 아이들만은 잘 부지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先先生의 묘갈명은 이전에 완성한 초본을 景達 형과 확인하였고, 繼八 또한 흠잡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하며, 지금 여러분들의 지적이 이와 같지만 자신의 쇠폐한 정신으로는 두루 미칠 수가 없다고 하고,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수정해야겠지만 손가는 대로 수정할 경우 다 뜯어고쳤다는 탄식이 있을 듯하며 나중에 오늘과 같은 의견이 없을 것이라 보장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여기 보내는 경달 형의 편지를 함께 펴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내용에서 언급한 선선생 묘갈명은 자신이 찬술한 好古窩 柳徽文의 묘갈명을 가리키는 말이고, 묘갈을 함께 검토하였다는 사람, 곧 景達은 柳必永(1841~1924)의 자이며 繼八은 柳昌植(1858~1912)의 자이다.
발신인 金道和(1825~1912)는 본관은 義城, 자는 達民, 호는 拓菴이다. 柳致明의 문인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을미년에 明成皇后가 일제에 의해 피살되는 사변이 나자 도내에 倡義 通文을 보내고, 1896년 의병대장에 추대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4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甚久阻。瞻耿之際。
專价惠訊。感慰方深。且審葽候
做履淸勝。僉致一安。切切慰仰。弟服人。
白首盆慽。亦足悲酸。而符到之行。自有先
後。歎且奈何。惟哀兒輩支保耳。
先先生碣銘。前日定本。旣與景達兄。
對同商確。繼八亦以爲無欠。而今又僉
議。指摘如此。自顧衰弊精神。更不得
周及。第當以僉議爲正。然隨手竄正。恐
有破碎之歎。安知異日。又無如今日之議奇
否。此去兄書。幷爲坼看切仰。餘。客擾
不宣謝。惟
雅照。
甲辰四月五日。弟 朞服人 金道和 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