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7월 22일, 柳必永이 답장에 대한 감사함과 집안의 근황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
1901년 7월 22일, 柳必永이 답장에 대한 감사함과 집안의 근황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류필영은 상대방의 안부편지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리움을 전하였다. 상대방에게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드님과 도성의 가뭄소요 등으로 걱정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상대방께서는 堂內의 喪威로 슬픈데 從氏兄의 궤연을 거두는 것이 멀지 않았으니 쇠약한 근력으로 아직 곡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류필영은 가뭄의 피해는 모두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우선 늦게 파종한 것은 아직 희망이 있으니 가랑비가 더 내리고 서리가 늦게 내리면 곡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앞날을 알 수 없어 근심되고 두렵다고 하였다.
류필영은 늘그막에 盆慽하여 외로움이 심하고 마음이 심란하다고 하였다. 큰 집의 都節은 예전과 같지만 從孫婦는 暑病이 창궐하여 처음에는 매우 걱정이 되었다고 하였다. 다행히 약을 제조하여 병의 증세가 나아졌지만 완전하게 낫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小奴가 의원을 찾다가 뜻밖에 상대방이 계신 곳으로 가서 병세를 논한 후 병에 맞는 약제를 받게 되었으니 기이한 기회이고 신의 도움이라고 하였다. 종손부의 병의 경과를 상대방에게 알려야 하지만 완전히 낫지 않아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상대방께서 또 손자를 보내 진맥을 받게 되었으니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형께서 먼저 해주셨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가을에 상대방께서 찾아와주시길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류필영(1841~1924)으로 본관은 全州이고 자 景達, 호 西坡이다. 柳致明에게 수학하였고 權璉夏, 李晩慤, 金興洛, 金道和 등과 교유 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擧義를 주장하였고, 1919년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문집으로 『西坡文集』이 있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