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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남익조(南翊朝) 외 2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98.4713-20180630.0372257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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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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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익조, 남교석, 남희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898
형태사항 크기: 23.5 X 4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8년 남익조(南翊朝) 외 2인 서간(書簡)
1898년 12월 초 10일, 남익조(南翊朝), 남교석(南敎奭), 남희조(南凞朝)가 한양조씨 집안에 보낸 편지이다. 『옥천선생유집(玉川先生遺集)』이 간행되어 축하한다고 하였다. 또 우암공(寓庵公)의 갈문(碣文)이 유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찾아가지 못하여 안부편지와 돈을 보낸다고 하였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98년 12월 초 10일, 南翊朝, 南敎奭, 南凞朝가 『玉川先生遺集』 간행 축하 인사와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한 편지
1898년 12월 초 10일, 南翊朝, 南敎奭, 南凞朝가 『玉川先生遺集』 간행 축하 인사와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한 편지이다.
남익조 외 2인은 형세 상 서로 만나서 討論하고 講究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옥천선생유집』을 찍어서 반질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趙氏 집안의 큰 경사이며 斯文의 큰 다행이라고 하였다. 또 珪璧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다면 100세를 밝게 비출 것이라고 하였다. 海上族親을 통해 寓庵公의 碣文이 문집에 들어가 간행이 된다는 것을 들었다고 하였다. 우암공은 南九明(1661~1719)으로 趙德鄰(1658~1737)이 그의 墓誌銘을 썼다. 이 글이 유집에 실리게 되었는데 자신들은 노쇠함이 점점 심해지고 근력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나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신 안부편지를 써서 구구한 정성에 사례를 드리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였다. 추록에 돈 4꾸러미를 보내고, 高祖考의 『活山遺集』 간행은 봄에 거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남익조, 남교석, 남희조로 본관은 英陽이다. 남희조(1849~1914)는 자는 宗汝, 호는 聽窩이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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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남익조(南翊朝) 외 2인 서간(書簡)

山川間闊。程途稍遠。一未當接膝討論。講
究世篤。雖勢使然也。然區區嚮往之心。
豈以山川間之也。奉告亦同此懷矣。伏惟
窮律。
僉體動止候。迢勝萬護。臨風遐溯。第切
憧憧。弟等。各保衰狀。何足奉浼。
玉川先生遺集。留在巾衍。爲多士之恨矣。
今聞繡梓印班云。豈但姓孫之慶。實爲
斯文莫大之幸也。珪璧出世。人人得以奉玩。
則輝映百世。永有辭於無窮矣。曾因海
上族親。聞其梗槪。則惟我寓庵公碣文登
刊云。事當躬晉。以參多士之末。而衰朽轉甚。
無以筋力致身。含意未果。替修候儀。以謝區
區之忱。而晩後一書。烏可望恕諒也。餘。惟冀
僉體保重。以副遐望。不備。伏惟。
僉照。謹拜候上。
戊戌 十二月 初十日。弟 南翊朝 南敎奭 南凞朝等 拜手。

錢文四緡。忘略汗呈耳。
高祖考活山遺集。方謀奇厥。而開春後。則爲擧事計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