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2월 초 10일, 南翊朝, 南敎奭, 南凞朝가 『玉川先生遺集』 간행 축하 인사와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한 편지
1898년 12월 초 10일, 南翊朝, 南敎奭, 南凞朝가 『玉川先生遺集』 간행 축하 인사와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한 편지이다.
남익조 외 2인은 형세 상 서로 만나서 討論하고 講究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옥천선생유집』을 찍어서 반질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趙氏 집안의 큰 경사이며 斯文의 큰 다행이라고 하였다. 또 珪璧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다면 100세를 밝게 비출 것이라고 하였다. 海上族親을 통해 寓庵公의 碣文이 문집에 들어가 간행이 된다는 것을 들었다고 하였다. 우암공은 南九明(1661~1719)으로 趙德鄰(1658~1737)이 그의 墓誌銘을 썼다. 이 글이 유집에 실리게 되었는데 자신들은 노쇠함이 점점 심해지고 근력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나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신 안부편지를 써서 구구한 정성에 사례를 드리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였다. 추록에 돈 4꾸러미를 보내고, 高祖考의 『活山遺集』 간행은 봄에 거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남익조, 남교석, 남희조로 본관은 英陽이다. 남희조(1849~1914)는 자는 宗汝, 호는 聽窩이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