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1월 14일, 李兢淵이 李燦和에게 判書公의 비석을 고쳐 세우는 일을 시작한 데 대하여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93년 11월 14일, 李兢淵이 李燦和에게 判書公의 비석을 고쳐 세우는 일을 시작한 데 대하여 축하한 후, 兜院의 定日 祭祀를 알리고, 改碣의 일을 잘 마치기 바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從先祖 判書公의 비석을 바꾸어 세우는 일은 백 년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었는데, 오늘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기쁘고 다행한 일이 없다고 서두를 연 후, 종손으로서 효성을 다한 끝에 체력은 한결같이 만중하고 告由는 잘 마쳤는지 물었다.
자신은 먼 조상을 추억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려가 일을 도우려 하였으나, 근래 들어 머리가 울리고 옆구리가 결리는 증세로 고생하느라 일어서고 앉는 데도 불편하여 늘 누워서 지내니 추위에 따른 병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종제와 문중 사람 두어 명을 보내어 대신 정성을 전하니 사실은 입막음일 뿐이라 죄송하기 한이 없다고 하였다.
또 兜院 제사의 정일은 그동안 인편으로 전하였는데 끝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우환이 있어서 이제부터 통문이나 편지로 전할 것이라 하고, 어느 편이 나을지 이제부터 판단이 될 것이라 하였다. 끝으로 큰일을 잘 치러 자신의 정성에 부응하기 바란다며 맺었다.
피봉의 慶亭은 慶流亭을 약칭한 이름으로 두루[周村] 종가를 가리키고, 추신의 부조 내역은 鵲山所에서 5냥, 두루 종파에서 5냥을 보낸다는 뜻이다.
발신인 李兢淵(1847~1925)은 본관은 眞城, 또 다른 이름은 李穆淵이다. 안동 두루[周村]에 살았다. 1895년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내려지자 權世淵을 대장으로 하는 안동 의진이 결성되고, 權世淵에 이어 金道和가 대장으로 추대되자 종사관으로 활동하여 『乙未義兵日記』를 남겼다. 200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