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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이긍연(李兢淵)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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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긍연, 이찬화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3
형태사항 크기: 25 X 45.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온혜 진성이씨 노송정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3년 이긍연(李兢淵) 서간(書簡)
1893년 11월 14일에 이긍연이 판서공의 비석을 고쳐 세우는 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찬화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종선조(從先祖) 판서공의 비석을 다시 세우는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축하를 전하고 고유제는 잘 마쳤는지 물었다. 자신은 달려가 일을 돕고 싶었지만 근래 병으로 몸이 불편하여 종제와 문중 사람을 대신 보냈으니 매우 죄송하다고 하였다. 또 두원(兜院) 제사 날짜를 인편으로 전했지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이제부터 통문이나 편지로 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큰일을 잘 치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93년 11월 14일, 李兢淵李燦和에게 判書公의 비석을 고쳐 세우는 일을 시작한 데 대하여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93년 11월 14일, 李兢淵李燦和에게 判書公의 비석을 고쳐 세우는 일을 시작한 데 대하여 축하한 후, 兜院의 定日 祭祀를 알리고, 改碣의 일을 잘 마치기 바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從先祖 判書公의 비석을 바꾸어 세우는 일은 백 년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었는데, 오늘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기쁘고 다행한 일이 없다고 서두를 연 후, 종손으로서 효성을 다한 끝에 체력은 한결같이 만중하고 告由는 잘 마쳤는지 물었다.
자신은 먼 조상을 추억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려가 일을 도우려 하였으나, 근래 들어 머리가 울리고 옆구리가 결리는 증세로 고생하느라 일어서고 앉는 데도 불편하여 늘 누워서 지내니 추위에 따른 병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종제와 문중 사람 두어 명을 보내어 대신 정성을 전하니 사실은 입막음일 뿐이라 죄송하기 한이 없다고 하였다.
또 兜院 제사의 정일은 그동안 인편으로 전하였는데 끝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우환이 있어서 이제부터 통문이나 편지로 전할 것이라 하고, 어느 편이 나을지 이제부터 판단이 될 것이라 하였다. 끝으로 큰일을 잘 치러 자신의 정성에 부응하기 바란다며 맺었다.
피봉의 慶亭은 慶流亭을 약칭한 이름으로 두루[周村] 종가를 가리키고, 추신의 부조 내역은 鵲山所에서 5냥, 두루 종파에서 5냥을 보낸다는 뜻이다.
발신인 李兢淵(1847~1925)은 본관은 眞城, 또 다른 이름은 李穆淵이다. 안동 두루[周村]에 살았다. 1895년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내려지자 權世淵을 대장으로 하는 안동 의진이 결성되고, 權世淵에 이어 金道和가 대장으로 추대되자 종사관으로 활동하여 『乙未義兵日記』를 남겼다. 2002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3년 이긍연(李兢淵) 서간(書簡)

老松亭 靜几下 侍人。
慶亭 謹謝候書。 謹封。
兢淵再拜謝。伏承書敎。
從先祖判書公墓道改珉之役。係是百年
未遑。而始擧於今日。慶幸孰大於是。仰惟
主鬯。費殫誠孝之餘。
體力一向萬重。將事利成否。族孫。其在
追遠景慕之私。準擬趨相。入近來。頭
疼脅癖。迭次作苦。起居不利。輒偃臥度
日。認是非寒事所使耶。不得已使從君
曁門員數人。替達衷悃。實不免塞兌。
怩悚何其。兜院定日行祀。中間轉告。畢
竟有浮沈之患。今於此事。以通以書。
備悉而周摯。其敏鈍從此判然。又豈非
歎仰耶。餘。
大事利就。以副鄙忱。不備。伏惟
尊察。
癸巳 至月 十四日。族孫 兢淵 再拜。
鵲山所。伍兩。
周村宗泒。伍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