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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김흥락(金興洛)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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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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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흥락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0
형태사항 크기: 21.9 X 48.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0년 김흥락(金興洛) 서간(書簡)
1890년 12월 17일, 김흥락(金興洛)이 쓴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 집안에 큰 상을 당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부고를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신은 몸이 점점 쇠약해가고, 조카는 회랭(回冷)을 앓고, 자형 이종태(李鍾泰)는 기침이 덜 한 것 같다고 하였다. 불이 난 임산서당(霖山書堂)과 부엌의 중건 상황을 묻고, 상대방이 부탁한 선고(先稿)는 곧 작업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90년 12월 17일, 金興洛은 자신과 주변의 근황을 전하고 霖山書堂의 재건과 부탁하신 先稿에 대해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
1890년 12월 17일, 金興洛은 자신과 주변의 근황을 전하고 霖山書堂의 재건과 부탁하신 先稿에 대해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김흥락은 상대방과 甥女, 子鼎의 안부를 물었다. 상대방에게 衣冠을 갖추고 나아감에 늘그막을 즐기면서 세상의 어지러움을 잊었으리라 생각된다고 하였다. 상대방 집안에 큰 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놀랐는데, 노인이 하늘로부터 稟賦 받은 것이 이 정도에 그치냐며 슬프다고 하였다. 아직 부고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도중에 지체된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자정의 得分은 기뻐할만하지만 앞으로의 得失은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김흥락은 자신과 주변의 근황을 전하였다. 먼저 귀와 눈, 정신이 침침해져 마치 西山에 지는 볕과 같다고 하였다. 또 돌림병과 감기도 겪었다고 하였다. 姪은 回冷을 앓고 있고, 孫稚는 점점 커가며 날마다 기운이 더해져 소란을 일으키는데 손자의 애비는 손님 접대와 응대로 이따금 신경을 쓴다고 하였다. 臨淸閣은 별다른 일은 없고 姊兄 李鍾泰은 올겨울에는 기침이 덜한 것 같다고 하였다. 孫의 초례는 婚主가 없고 좋은 계절도 저물어 가 탄식만 나온다고 하였다.
임산서당의 일은 이미 마쳤다고 하였다. 다만 廚舍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놀랐는데 그들과 함께 서당을 다시 지었는지 물었다. 錦陽廚舍도 동시대에 화재로 소실이 되었으니 운수가 같지 않겠냐고 하며 柳宗元이 쓴 시를 이야기 하였다.
상대방이 부탁한 先稿는 일이 있어 아직까지 작업을 하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부탁한 뜻에 부응할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식견이 형편없어 선고의 유고 내용을 넣고 뺄 수 있겠냐고 하였다. 그래서 자형 이종태와 충분히 消詳하게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김흥락(1827~1899)으로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繼孟, 호는 西山이다. 金誠一의 胄孫이고 아버지는 金鎭華이다. 柳致明의 문인이고 李滉, 李象靖, 류치명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관직은 仁陵參奉, 司甕院主簿, 경상도도사, 사헌부지평 등에 임명되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894승정원우부승지영해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렸다. 한말 李敦禹, 權璉夏 등과 교유하였다. 사후 邵溪書堂에 입향 되었다. 저서로 『서산집』 이 있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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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김흥락(金興洛) 서간(書簡)

冬初。賢器歷訪。
手訊又鄭重焉。殊不能登時仰謝。而常置
凡案間。懷到諷玩。認之爲故人顔面。受賜不已
多乎。甚荷甚荷。卽今歲律已窮。寒威栗烈。伏惟
燕養體韻。對時冲謐。大被團歡。衣冠進趨。想有
以娛晩景。而忘世紛矣。甥女亦荷庇穩遣否。堂
內大喪。夢外驚愕。此老平日稟賦。豈謂壽限止此乎。
傷痛可言。赴書未至。豈或中滯耶。子鼎得分。可喜。
而前頭得失。非可準必。祗得盡其在我者而已。欲作書。而
擾擾未能。可恨可恨。弟。見無大段疾痛。而耳目神精。駸駸
如崦西之景。黙數平生。何所猷爲。而衰退遽至此乎。
良以爲憐。弟經軫冒。姪患回冷。亦不可謂安穩。惟孫稚
稍茁。日負氣作拏。乃翁接應。往往煞費力耳。淸閣知
無他故。老姊兄咳喘。今冬稍似減分云。但其孫醮。以婚主
不在。有佳期晼晩之歎耳。霖山當役已完。可謂了得一
大事。但廚舍回祿之災。令人愕然驚心。今亦與之更新否。
錦陽廚舍。亦同時失火。無乃一般氣數耶。非偶然也。雖
然。嘗見柳文。有賀人失火書。以大享之先有小屈也。
屢世幽寃。理必可伸。或者此爲之兆耶。寄示先稿。冬
間連有事擾。未及試手。然弟於此事。豈敢泛忽。早晩當
從頭審繹。思有以仰副勤囑之意。但自家見識鹵莽。
有不敢自信者。安得遽存拔於其間耶。祗當盡吾見解可
及處。亦與李姊兄。十分消詳爲皆耳。適有人去英縣者。略
草此。以謝厚義。兼探近侯。餘不備。伏惟
尊照。
庚寅 臘月 十七日。損弟 金興洛 拜手。

北塞賜還。吾黨可交賀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