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3월 3일 李孝淵이 근래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注谷의 사돈에 보낸 편지
1888년 3월 3일 李孝淵이 근래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注谷의 사돈에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상세내용은 사돈관계임에도 서로 격조했던 상황을 기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편지가 막힌 것은 얼굴을 대하고 회포를 푸는 것보다 그래도 낫겠지만 결국에는 서로 잊어버렸으니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얼굴을 대하고 회포를 푸는 것은 또한 형세가 그렇지 못한 소치겠으나 편지는 어찌 그리 행하기 어려운가. 말하자면 마음 한편에 서로 다 주지 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움이 마음에 가득하면서도 미심쩍고 부끄러운 마음이 절실합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상세하게 전하면서 "어느덧 봄철 화창한 날에, 생각건대 침상을 마주하시는 절선이 좋으시고, 식솔들도 모두 평온하시며 마을의 광기(光氣) 또한 다른 염려를 면하셨으리니 구구히 감축 드리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저는 근래 마른 나무처럼 소위 스스로 침고하고 있습니다. 돌아갈 만한 이치도 없는데, 봄 한철에 두 번씩 감기를 하니 모르겠습니다만, 조물주의 구박이 심해졌습니다. 바야흐로 베게에 엎드려 끙끙 앓으니 살맛이 딱 끊어집니다. 다만 아이들이 이를 겪으며 비로소 안정되었으니 이것이 위안이 됩니다만, 또 종두가 발병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조금의 근심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을에도 천연두를 앓는 곳이 많습니다. 제가 10년간 도모를 한결같이 행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나 겉모습이 허투루 되었을 뿐이니 스스로 돌아보건대 어찌 몹시 부끄럽지 않겠습니까마는 아마도 좌하께서도 그다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니 득실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듣건대 반행이 다음 달 초에 있다고 하는데, 그 때는 좌하께서 나와 너무 비교하지 말아주십시오, 바라건대 마음을 더 써 주시기를 미리부터 정성을 다해 바랍니다. 베개에 기대 입으로 불러주느라 마음에 품은 바를 다 쓰지 못했으니 헤아려 용서해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살펴봐주십시오."라고 편지를 맺고 있다. 마지막은 "무자년 3월 3일 査弟 李孝淵은 절합니다."라는 서명을 남기고 있다.
李孝淵(1820~1891)은 자가 學世이고, 호는 預庵이다. 본관은 永川이고, 부친은 文鉉이다. "병술년(1886년) 5월 1일 첨지중추부사 藥坡 이공의 종상일을 맞이하여, 척소제(戚少弟) 영천 李孝淵李孝淵이 지은 제문(祭文)"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의 무자년은 1888년일 것이다. 또한 수신자는 바로 한양조씨 趙秉蓍(1826~1896)이다.
『漢陽趙氏兵參公派世譜』,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