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9월 1일, 李中斗가 李燦和에게 상대의 조부가 호조에 추증된 경과를 설명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87년 9월 1일, 李中斗가 李燦和에게 상대의 아버지가 동지중추부사의 실직에 제수된 데 따라 追恩이 三代에 미친 것을 축하하며, 상대의 조부 李鉉禹가 호조에 추증된 경과를 설명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8월 그믐날의 都政에서 영감 아재께서 동지중추부사의 실직에 제수되고, 추증의 은혜가 위로 삼대에 미치게 되어 축하드리는 마음 금할 수 없는데, 더구나 상대에게는 아들 된 입장이니 기쁨이 어떻겠느냐고 치하하였다. 그리고 지난달 申斗瑞가 편에 보내준 편지로 그 때의 상황을 잘 알았지만, 이미 여러 달이 지났는데 아재는 강녕하시고 모시는 상대의 생활도 진중하다니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 간절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한결같이 고생스러운 생활이니 전할 말이 없다 하고, 그 사이 대각의 직함을 맡게 되어 지금까지 출입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당초에는 吏曹의 직함을 주선하려 하였으나 전후 3대에 홍문관의 직함이 없는 경우에는 이조에 주선하는 격례가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戶曹의 직함으로 추증하여 朝報에 내었다 하고, 상대의 뜻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입계하지 않고 이조에 추증되기 보다는 차라리 입계하고서 호조에 추증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하였다. 일전에 河回의 柳道軾 氏도 호조에 추증된 것을 자세히 들었을 것이라며 어찌 격례를 어기겠느냐고 하고, 자신의 성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이해해달라고 하였다.
호조 운운한 말은 상대의 조부인 李鉉禹가 이때 戶曹 參判에 추증된 것을 말한 것이다.
마지막에 자신의 아들이 내려갔는데 혹 이미 탈 없이 도착하였는지 묻고, 맏아들에게도 상세히 전갈하였는데 이미 들었던지 물었다.
발신인 李中斗(1836~1914)는 본관은 眞城, 자는 運卿, 호는 素溪이다. 아버지는 晩栢이다. 1874년 증광시 생원에 입격하고 18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 참의를 제수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세상에 나서지 않고 독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