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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중두(李中斗)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87.1111-20180630.07942570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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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중두, 이찬화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1887
형태사항 크기: 22.8 X 34.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온혜 진성이씨 노송정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7년 이중두(李中斗) 서간(書簡)
1887년 11월 9일에 이중두가 상대방의 부친인 이만임의 증직 직첩을 내려 보낼 때 장수(張數)를 확인하지 않은 일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 이찬화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동짓달의 상대방과 족숙 및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객지생활이 탈은 면하였고 친족들도 여전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이 조상께 증직 고유를 올린 일을 축하하고, 직첩이 나올 때 급한 인편과 겹쳐서 교감만 하고 장수를 확인하지 못하였으니 매우 송구하다고 하였다. 혹시 정부인의 직첩이 빠졌다 하더라도 정부인임은 확실하며, 다시 직첩을 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으니 이해해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87년 11월 9일, 李中斗李燦和에게 증직 직첩의 張數를 확인하지 않고 보낸 일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87년 11월 9일, 李中斗李燦和에게 아버지 李晩恁의 증직 직첩을 내려 보낼 때 張數를 확인하지 않았다 하고, 어머니 貞夫人의 직첩이 빠졌다 하더라도 정부인임은 확실하며, 다시 직첩을 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으니 양해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9월에 보낸 편지를 부임을 맞이하러 보낸 사람 인편에 받고서 그 때 안부를 잘 알았었는데, 이미 네 달이 지났으니 그리운 마음이 다시 간절하다 하고, 이 동짓달의 추위에 연세 높은 족숙께서는 강녕하시고 어른 모시는 상대의 건강도 좋은지를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객지 생활이 별 탈은 면하였고 여러 친족들도 여전하다 하고, 그 사이에 이미 조상께 증직에 대하여 고유를 올렸다니 축하하는 마음 끝이 없다고 하였다. 증직 직첩이 나올 때는 마침 급한 인편과 겹쳐서 교감만 하고 張數를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였는데, 지금 이런 말씀이 있으니 매우 부끄럽고 죄송하다 하였다. 그러나 원래 官敎가 나올 때는 으레 자신의 부서에서 내용을 써 보내어 玉璽를 찍어 오면 註를 단다 하고, 직첩이 나오고 나오지 않고를 막론하고 지금 貞夫人인 것은 마찬가지라 하였다. 상대는 혹 중도에서 농간을 부린 것으로 의심하지만 밝은 세상에서 그럴 이치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다시 증직 직첩을 내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이해해달라고 하였다.
발신인 李中斗(1836~1914)는 본관은 眞城, 자는 運卿, 호는 素溪이다. 아버지는 晩栢이다. 1874년 증광시 생원에 입격하고 18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 참의를 제수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세상에 나서지 않고 독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7년 이중두(李中斗) 서간(書簡)

新延便。獲承菊秋
惠書。備審其時節度。而已經四
朔。懷仰更切。謹問至冱。
台叔主壽體候康寧。
侍餘體事淸穆。仰慰溯不任
區區。族從。客狀姑免恙。諸族
相依耳。轉聞其間。已爲
焚黃云。奉下慶忭。曷有其極。
贈帖出來時。適値急便。只校
張數。未及細考矣。今有此敎。須
甚愧悚。然元來官敎出時。例有自我
書送安寶以來。則懸註雖自
我書之。▣▣不可。在人帖當初
護軍時。果有出帖之事耶。無論出不出。
今爲貞夫人。則一也。座下其或疑之。
以從中幻弄耶。天日在上。寧有此理。
雖欲更出。決非容易之事。諒之如何。
且已經焚香。則今不必更事張皇。
深量深量焉。餘萬。忙不備謝上。
丁亥 至月 九日。族從 中斗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