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11월 9일, 李中斗가 李燦和에게 증직 직첩의 張數를 확인하지 않고 보낸 일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87년 11월 9일, 李中斗가 李燦和에게 아버지 李晩恁의 증직 직첩을 내려 보낼 때 張數를 확인하지 않았다 하고, 어머니 貞夫人의 직첩이 빠졌다 하더라도 정부인임은 확실하며, 다시 직첩을 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으니 양해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9월에 보낸 편지를 부임을 맞이하러 보낸 사람 인편에 받고서 그 때 안부를 잘 알았었는데, 이미 네 달이 지났으니 그리운 마음이 다시 간절하다 하고, 이 동짓달의 추위에 연세 높은 족숙께서는 강녕하시고 어른 모시는 상대의 건강도 좋은지를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객지 생활이 별 탈은 면하였고 여러 친족들도 여전하다 하고, 그 사이에 이미 조상께 증직에 대하여 고유를 올렸다니 축하하는 마음 끝이 없다고 하였다. 증직 직첩이 나올 때는 마침 급한 인편과 겹쳐서 교감만 하고 張數를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였는데, 지금 이런 말씀이 있으니 매우 부끄럽고 죄송하다 하였다. 그러나 원래 官敎가 나올 때는 으레 자신의 부서에서 내용을 써 보내어 玉璽를 찍어 오면 註를 단다 하고, 직첩이 나오고 나오지 않고를 막론하고 지금 貞夫人인 것은 마찬가지라 하였다. 상대는 혹 중도에서 농간을 부린 것으로 의심하지만 밝은 세상에서 그럴 이치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다시 증직 직첩을 내려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이해해달라고 하였다.
발신인 李中斗(1836~1914)는 본관은 眞城, 자는 運卿, 호는 素溪이다. 아버지는 晩栢이다. 1874년 증광시 생원에 입격하고 18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 참의를 제수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세상에 나서지 않고 독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