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9월 22일, 李精浩가 李燦和에게 장로 모임의 준비에 대해 조언하고 부친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82년 9월 22일, 李精浩가 李燦和에게 이번 장로들의 모임에는 형편을 헤아려 간략하게 차리는 것이 권도에 알맞게 하는 방도라 하고, 자신도 아버지를 모시고 가면 상대와 4, 5일 만나게 되겠지만 가슴이 찬 병으로 편안하고 한가하게 지낼 수 없을 듯하니 한탄스럽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小祥 때에 헤어진 뒤 어느새 다섯 달이 지나니, 먼 곳에 사는 사람이라 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데 낙엽지는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더욱 서글프게 한다 하고, 방금 심부름꾼에게 물어 큰 형님이 아흔의 연세에도 건강하시며 아드님도 공부 잘하며 원근의 집안 모두도 평안함을 알게 되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늙으신 어른이 평안하여 다음 달에 떠나려 하시는데, 그 때 날씨가 방해하지 않고 순조로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宗中의 장로들이 노경의 회합을 가지는 바람에 이런 과중한 일이 생겼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반드시 출발하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하고, 다만 옷을 갖추어 여러 날 지내는 것은 젊은이에게도 피로한 일이라 미리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더구나 位田의 농사가 흉황이라 하니 상례대로 대접하려 하면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고 앞으로 모임이 단절되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하고, 사정에 따라 간략하게 차리는 것이 상황에 맞추어 처리하는 일일 듯하다고 하였다. 아버지도 심부름 온 사람에게 이 뜻으로 분부했으니, 다시 有司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때 자신이 모시고 가면 상대와 4, 5일 만나게 되겠지만 전에 없이 가슴 사이에 냉증이 생겼는데 아마 요즈음 많은 곡절을 겪느라 그럴 것이라 하고, 현재 모든 사람이 당하는 厄會 때문에 베개를 돋우고 한가하게 즐기며 보낼 수 없을 것이라 탄식하였다.
각처에서 섬으로 간 것은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며, 宜仁과 섬마[島村], 溫惠와 浮浦에서는 이미 함께 출발했는지 묻고, 友琴에서는 통문을 받고 오는 그믐쯤 직접 갈 것이라 하더라고 하였다.
수신자를 ‘어른 모시는 종손에게’라고 구별하여 지칭한 것은 이때에 老宗孫 李晩恁이 92세의 노령으로 재세해 있었기 때문이다.
발신인 李精浩(1834~1907)는 본관은 眞城, 자는 粹吾, 호는 山野이다. 아버지는 周行이다. 저서로 『山野遺稿』가 전한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