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8월 24일, 李啓魯가 李晩恁에게 공무에 쫓기느라 틈을 내어 찾아뵙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9년 8월 24일, 李啓魯가 李晩恁에게 어버이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이후로 심사가 더욱 외롭다는 근황을 전하고, 공무에 쫓기느라 한 번 틈을 내어 찾아뵙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그리워하던 중에 편지를 받고 이 가을에 상대의 건강이 절서에 맞게 태평하고 식구들도 고루 평안하며 마을 내 근황도 안녕함을 알게 되니 축하하는 마음 금할 수 없다고 하고, 자신은 어버이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신 후로 외로운 심사가 옛날 서울 泮村에서 객지 생활하던 때보다 곱절이나 심하다고 하고, 그러나 공무가 바쁘고 내방하는 사람이 많아 감당할 수 없어 고민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 번 인사를 드리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닐 터인데, 다만 틈을 낼 수가 없어 바라보며 그리워할 뿐이라 하였다.
발신인 李啓魯(1828~1886)는 본관은 眞城, 자는 聖建, 호는 石林이다. 아버지는 會相이다. 봉화 鹿洞에 살았다. 185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홍문관 교리를 지내고 현풍 군수, 안동 부사를 지낸 후 부제학, 예조 참판, 병조 참판, 동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수신인 李晩恁(1798~1891)은 본관은 眞城, 자는 德彦, 호는 蠹齋이다. 아버지는 鉉禹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