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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이찬(李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70.4717-20180630.07942570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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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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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찬, 이만임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0
형태사항 크기: 25.5 X 42.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온혜 진성이씨 노송정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0년 이찬(李瓚) 서간(書簡)
1870년 2월 18일에 이찬이 상대방 측의 안부와 돌림병 여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이만임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소식이 없던 것에 탄식하고 봄철의 상대방과 식구 및 조카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집안의 근심과 병으로 겨를이 없는데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간 손자는 소식이 없으며, 재종형의 상과 가일 종수씨(從嫂氏)의 상을 당했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 측의 돌림병 기운을 묻고 자신의 마을은 이런 근심은 면하였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70년 2월 18일, 李瓚이 사돈 李晩恁에게 집안의 연이은 초상을 알린 후 상대의 마을에는 증후가 없는지 염려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70년 2월 18일, 李瓚이 사돈 李晩恁에게 손자가 會試를 보러 서울에 간 후 소식이 없어 염려가 된다 하고, 집안의 연이은 초상을 알린 후, 상대의 마을에는 다른 증후가 없는지 염려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먼저 60여리도 되지 않는 거리에 살면서 새해가 된 뒤 세 달이나 지나도록 천리 밖인 것처럼 소식이 없으니 인정에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하며 봄추위가 아직 심한 때에 정양 중의 건강은 평안한지 묻고, 집안 식구와 조카도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연말연시에 걸쳐 감기를 앓느라 고생을 하였는데 집안의 근심과 병으로 얼굴 펼 날이 없다 하고, 손자 아이는 會試를 보기 위하여 집을 떠났는데 아직 서울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없으니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 하였다. 더구나 집안의 재앙이 그치지 않아, 지난 그믐에는 再從兄의 상을 당하고 어제는 가일[枝洞] 從嫂氏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슬픈 탄식 이외에 객지의 형편 상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절차에 유감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하였다. 또 상대방 쪽은 병 기운이 닥칠 염려는 없는지 묻고 자신의 마을은 이런 근심은 면하였다고 하였다.
내용 중에서 서울로 會試를 보러 갔다고 한 손자는 李承穆(1837~1873)으로 자는 君顯, 호는 秋巖이다.
발신인 李瓚(1798~1887)은 본관 固城, 자는 景極이고, 호는 帆溪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臨淸閣 宗孫으로 학문과 덕행으로 중망을 받았다. 아들인 李鍾晉李晩恁의 사위가 되었으니 둘 사이는 사돈 관계가 된다.
수신인 李晩恁(1798~1891)은 본관은 眞城, 자는 德彦, 호는 蠹齋이다. 아버지는 鉉禹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0년 이찬(李瓚) 서간(書簡)

松亭 棣座執事。
臨淸 査弟 期服人 謹拜狀。 謹封。
地不滿數舍。而歲新後。已過三弦。便
信無異涯角。雖或有轉遞探得。而
人情安得不於邑耶。春寒尙峭。仰惟
靜中棣履萬護康寧。閤節平安。
咸兄侍做佳吉。溯溯切切。弟服人。跨歲
寒感。便成家計。已足苦憐。而家間憂
病。展眉無日。孫兒會行。姑未聞入京消
息。在家瑕慮。或忘寢食。且家禍未已。前
晦遭再從兄喪。悲撓未定。昨又聞枝洞
從嫂喪。悲歎之外。客地情狀。不但送
終之慽而已。奈何。貴里能俾得淸淨。
無逼拶之患否。鄙村。則姑免此耳。
餘。因地境訃伻。忙修候儀。不備狀。
庚午 二月 十八日。査弟 拜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