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2월 18일, 李瓚이 사돈 李晩恁에게 집안의 연이은 초상을 알린 후 상대의 마을에는 증후가 없는지 염려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1870년 2월 18일, 李瓚이 사돈 李晩恁에게 손자가 會試를 보러 서울에 간 후 소식이 없어 염려가 된다 하고, 집안의 연이은 초상을 알린 후, 상대의 마을에는 다른 증후가 없는지 염려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먼저 60여리도 되지 않는 거리에 살면서 새해가 된 뒤 세 달이나 지나도록 천리 밖인 것처럼 소식이 없으니 인정에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하며 봄추위가 아직 심한 때에 정양 중의 건강은 평안한지 묻고, 집안 식구와 조카도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연말연시에 걸쳐 감기를 앓느라 고생을 하였는데 집안의 근심과 병으로 얼굴 펼 날이 없다 하고, 손자 아이는 會試를 보기 위하여 집을 떠났는데 아직 서울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없으니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 하였다. 더구나 집안의 재앙이 그치지 않아, 지난 그믐에는 再從兄의 상을 당하고 어제는 가일[枝洞] 從嫂氏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슬픈 탄식 이외에 객지의 형편 상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절차에 유감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하였다. 또 상대방 쪽은 병 기운이 닥칠 염려는 없는지 묻고 자신의 마을은 이런 근심은 면하였다고 하였다.
내용 중에서 서울로 會試를 보러 갔다고 한 손자는 李承穆(1837~1873)으로 자는 君顯, 호는 秋巖이다.
발신인 李瓚(1798~1887)은 본관 固城, 자는 景極이고, 호는 帆溪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臨淸閣 宗孫으로 학문과 덕행으로 중망을 받았다. 아들인 李鍾晉이 李晩恁의 사위가 되었으니 둘 사이는 사돈 관계가 된다.
수신인 李晩恁(1798~1891)은 본관은 眞城, 자는 德彦, 호는 蠹齋이다. 아버지는 鉉禹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