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59년 이형수(李亨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59.4717-20180630.01652570015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형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59
형태사항 크기: 25 X 36.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59년 이형수(李亨秀) 서간(書簡)
1859년 7월 21일에 안동 법흥에 사는 이형수(1784~1870)가 안동 임하 대평의 전주 류씨 호고와 댁에 보내는 답장이다. 상대방의 아들이 지나가는 길에 방문하여 상대방의 편지를 전해 받고 쓴 것으로, 다음 달 상대방과의 만남을 기다린다는 사실과 그때 함께 영호루를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하였고, 서원의 향사를 다음 달로 물려 옮긴다는 것에 다른 서원에서 이론이 없다는 사실도 전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59년 7월 21일에 안동 법흥에 사는 李亨秀가 다음 달 모임에 상대방을 만나길 기대한다는 내용을 담아 안동 임하 대평의 전주 류씨 호고와 댁에 보내는 편지
1859년 7월 21일에 안동 법흥에 사는 李亨秀(1784~1870)가 다음 달 모임에 상대방을 만나길 기대한다는 내용을 담아 안동 임하 대평의 전주 류씨 호고와 댁에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에는 10일 사이에 高川의 젊은 벗을 만나 지내면서 淸軒의 생활이 스스로 보위됨을 물어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뜻밖에 상대방의 아들이 지나가는 길에 방문했고, 아울러 편지를 받게 되는 은혜를 입었으니, 본인의 마음은 차가운 물에 씻어 맑아지는 것 같았으나 인용한 ‘隱侯[隱侯]의 詩語’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포를 야기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은후의 시어’는 은후의 시 ‘別范安成’에서 드러낸 감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의 내용은 "生平少年日分手易前期 及爾同衰暮 非復別離時 勿言一尊酒 明日難重持 夢中不識路 何以慰相思(우리네 인생살이 젊을 적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하기 쉽더니, 그대와 함께 늙은 지금 이 시절, 더 이상 헤어질 때 말고 한 잔 술 별거냐고 말하지 마소, 내일 다시 이 술잔 잡기 어렵네 꿈속에 찾아갈 길 알지 못하니, 무슨 수로 그리움을 달래 보리오)"1)1) 『古今詩刪 卷9 梁詩』(한국고전번역DB 참조) 이다.
이어 편지를 통해 상대방이 경전을 공부하는 생활은 조용하게 보양하여 때에 맞게 충밀하고, 막내는 책상을 대함에 신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어지러운 세상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다. 더위로 고생하며 지내는데 넓은 집과 긴 처마가 아니었다면 진실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늘그막이 책을 보고 완상하는 것은 족히 가슴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니 혼폐를 떨치지 못하는 것은 어찌 이곳의 병든 자신과 같은데 이르겠냐고 하면서 상대방을 칭송하였다. 발신자는 지난달 한 달 동안 기운과 정신이 손상되어 밥 한 끼 먹는 동안 세 번 화장실에 가는 설사가 이따금씩 있었고 눈의 부종으로 푸른 것과 흰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며칠 전 부터 언뜻 가을 기운이 느껴져 일어나 억지로 관을 쓰고 앉았으며, 기년복 입는 망일과 당무의 참상이 또 따라서 좌우에서 어지럽고 시름겹게 하여 말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다만 고요하게 지내는 가운데 손꼽아 계산하는 것은 다음 달 한 번의 모임이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마땅히 출입을 물리치고 책상을 청소하고 기다릴 것이며, 그때 영호루의 경치도 함께 감상할 수 있길 희망하였다. 마지막 부분에는 서원의 丁日을 다음 달로 물려 옮긴 것은 우연이지만 다른 서원도 향사를 행하는데 이론이 없으며, 나머지는 지난번에 기약한 것이 바뀔 듯 하다고 전하였다.
마지막 인사 부분에는 바빠 마음에 쌓인 것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니 오직 상대방의 살핌에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이형수안동 법흥 출신으로, 본관은 固城, 자는 賢民, 호는 霽谷이다. 저서로 󰡔霽谷集󰡕이 전한다. 金興洛이 그의 행장을 짓고, 權承夏가 묘갈명을 찬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9년 이형수(李亨秀) 서간(書簡)

大平 弟 謝上。
渭川 經案 回敬。
旬間逢接高川少友。詢悉淸軒動止。只自爲
衛。外料。荷賢器歷訪。兼拜左墨。此心便似羾
寒濯淸。而所引隱侯詩語。何其使人。惹起懷緖
緖也。仍審邇來潦炎。
經履燕頤。以時冲謐。季難對床加護。此乃缺界。
好信息。若其炎官苦逼。非廣厦邃簷則固難
消遣。然吾座下。晩暮觀玩。足可令胸膈生涼。昏
廢不振。豈至如此間病物耶。弟。前月一朔。傷氣損
神。迬迬有泄三遺之患。司視浮腫不辨蒼素。
自數日乍得秋候。强起冠巾而坐。然書卷
倚閣者。則更無遮眼之道。朞制亡日。堂廡喪慘。
又從。而擾惱左右。幷無悰況可言。涔寂中。所屈指
而計者。來月一會。弟。當幷謝出入。掃榻以俟。湖樓景物。亦可次第收取否。第
恐爲造化兒則劇耳。
丁日之退移。後月天
時。偶然他院。幷將行
之。無異議云矣。餘。
前期似◘。緣忙。不盡
底蘊。惟在
雅察。謹謝狀。
己未 七月 念一日。忝弟 李亨秀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