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청명 날에 李亨秀가 성명 미상인에게 서로간의 늘그막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지은 시를 보내며 화답을 요구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57년 청명 날에 李亨秀가 성명 미상인에게 서로간의 늘그막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지은 시를 보내며 화답을 요구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번 편지는 병에 시달리는 중이라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우연히 졸렬한 시를 지어 보내었는데, 청명일에 답장을 받아보니 아프던 머리가 다 나을 만큼 정경이 선명하다 하고 자신에게 큰 선물이 된다 하였다. 이어서 연일 비가 내리는 날씨에 조섭 중의 근황을 물으며 급속히 노쇠해 가는 나이에 한 번 위태로운 고비를 겪었다니 매우 염려가 된다 하고, 아우님의 건강과 아들의 공부하는 근황을 아울러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배의 종기와 두창으로 봄 세 달을 다 보냈는데 앞으로 독서할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렇게 지내는지 한탄하고, 상대와 이웃이 되어 자주 만나는 권씨 성의 선비가 화운한 시를 보냈더라고 하며 둘 사이의 의지하며 학문적으로 도움을 주는 생활이 산중의 좋은 일일 것이라 치하하였다. 그리고 상대에게 고체시 한 수를 보내니 권 선비와 함께 보고 고수의 솜씨는 어떠한지 보여 달라고 하였다. 燁老[字에 ‘燁’자가 들어가는 노인]가 죽을 때 이별한 일은 노경의 회포를 더하는 일이어서 오랠 수로 마음이 좋지 않다는 말을 전하고, 말미에 다음과 같은 7言排律 20句를 적어 보내었다.
去年寒食花發早。
折花沽酒慰衰抱。
今年寒食雨連月。
却敎東君暗中老。
天公不遺貧病我。
添得霜華兩鬢皓。
自知歡意年年減。
況又傷心送朋好。
羡子新居卜渭濱。
籬宜種菊田宜稻。
掇拾家書多異聞。
偃仰邱園悅古道。
聞說陶公南村趣。
杖藜逢迎其披草。
往往兒祿糜亦可。
渺論縱橫入禮昊。
未信山村今寂寞。
一揮足令群盲倒。
我欲携手老翠微。
三逕平明落花掃。
발신인 李亨秀(1784~1870)는 본관은 固城, 자는 賢民, 호는 霽谷이다. 아버지는 周生이다. 金鵬運을 사사하고 학행으로 자질을 이끌어 향내의 중망이 있었다. 저술로 『無鏡錄』, 『過希稿』, 『耋言』 등이 있고 문집으로 『霽谷集』이 전한다. 아들 李庭嶷이 류치요의 딸과 혼인하여 두 집안이 사돈 간이 되었다.
수신인은, 피봉이 남아있지 않고 왕복의 내용에 추정할 근거가 없으나 류휘문 집안에 보낸 것이라고 볼 때 일찍 세상을 떠난 사돈인 柳致堯의 백씨 柳致喬일 것으로 짐작된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