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55년 김헌규(金憲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55.4721-20180630.079425700326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헌규, 이찬화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작성시기 1855
형태사항 크기: 21 X 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온혜 진성이씨 노송정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55년 김헌규(金憲奎) 서간(書簡)
을묘년 3월 14일에 김헌규가 사위와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찬화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봄이 된 뒤에 상대방의 아들이 한 번 올 수 있을 것이고 큰손자도 정초에 했던 약속을 어기지 않을 듯한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어서 늘그막에 외로운 마음을 비할 데가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과 식구들의 복제(服制) 중의 안부를 묻고 마을사람들의 안부도 물었다. 자신은 오랜 병이 재발한데다 눈병까지 앓고 있지만 손자를 본 경사는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언제 만날 수 있는지를 물으며 편지를 마쳤다.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55 3월 14일, 金憲奎가 사돈 李燦和에게 사위와 손자가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을묘년 3월 14일, 金憲奎가 사돈 李燦和에게 눈병이 들어 괴로운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사위와 손자가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 인편에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편지로 축하를 드리려고 하였으나 인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봄이 된 뒤에 상대의 아들이 한 번 올 수 있을 것이니, 큰 손자 또한 정초에 했던 약속을 어기지 않을 듯하였는데, 곧 남쪽으로 올 날이 가까운데도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하고, 늘그막의 외로운 심사는 사물에 비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매우 울적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근래에 복제 중의 기거는 진중하며 집안 식구들도 고루 잘 지내고 촌내 여러분들도 태평한지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오랜 병이 재발하여 신음하며 지내는데 눈병까지 괴로워 불쌍하기 그지없다 하였다. 손자를 본 경사는 기특하고 다행스럽다 하고, 그 골격이 아마도 범상하지 않을 터인데 집 아이를 보냈지만 귀로 듣는 것이 어찌 눈으로 보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 매우 보고 싶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병들어 버려진 몸으로 어찌 험준한 고갯길을 쉽게 넘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이것이 이른바 쓸 데 없는 근심이라는 말일 것이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묻고 편지를 쓰려니 아득한 마음이라 하고 말을 맺었다.
발신인 金憲奎(1849~?)은 본관은 宣城, 자는 文述, 호는 灘厓이다. 개명한 이름은 獻奎이다. 아버지는 輝蘊, 생부는 輝華이다. 영주에 살았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아들 炳俊金憲奎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므로 둘 사이는 사돈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5년 김헌규(金憲奎) 서간(書簡)

省。客臘轉梯。得聞喜報。意欲
一書馳賀。偵便未易。且開春後。
可得允君一來。大孫亦似不負正初
之約。日窄南路。尙爾寂然。老
者孤懷。不可方物而然耶。殊甚
悵鬱。謹伏詢比際。
服體起居節萬護珍重。
廡致勻勝。村候底在泰平。
仰溯區區之忱。査弟。恒以宿祟
闖發。呻吟度了。而今又阿睹見
苦。自憐無已。孫曾之慶。奇幸奇幸。
而其骨相。想不凡矣。雖送家兒
耳之者。安能如目之者乎。甚是戀
念。自顧癃廢。豈可容易於峻險之
路哉。是所謂柒室之語也。奉際
那間。臨紙茫茫。餘萬。留不備禮。
乙卯 三月 十四日。査弟 金憲奎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