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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이병하(李秉夏)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49.4717-20180630.0165257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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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병하, 류치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49
형태사항 크기: 29.2 X 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9년 이병하(李秉夏) 서간(書簡)
1849년 7월 24일 이병하류치교에게 보낸 편지로, 상대가 건강과 공부의 근황이 좋으며 아들과 손자도 잘 지낼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이어 「태극도해」의 의미에 대해 자신 혼자만의 견해로 쓴 글이어서 이를 교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삼현에서 모이기로 한 약속은 근래에 병으로 인한 게으름이 심하여 반드시 그렇게 될 지는 미리 점치기 어렵지만 자신의 볼 일을 겸하여 갈 것임을 알렸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849년 7월 24일 李秉夏柳致喬에게 「太極圖解」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교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三峴에서 모이기로 한 약속에 자신의 볼 일을 겸하여 갈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49년 7월 24일 李秉夏柳致喬에게 「太極圖解」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교정해 달라고 부탁하고, 三峴에서 모이기로 한 약속에 자신의 볼 일을 겸하여 갈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國喪에 대하여 신민의 애통이 끝이 없다고 서두를 연 뒤, 서울에서 십 년 동안 이웃이 되어 지낸 것은 기이한 일인데, 오늘 이별은 오래된 계획이므로 깊이 한탄할 것은 아니나 이후로 소식이 멀어질 것이니, 아득한 산천을 향하여 달려가는 마음 금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편지로 회포를 말하려다가 뜻대로 하지 못하였는데도 넓은 아량으로 먼저 안부를 물어주니, 돌보아주는 어진 마음이 석별의 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감사한 마음을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가을 기운이 생겨났으나 오랜 비가 온전히 개지 않은 이때, 건강과 공부의 근황이 좋으며 아들과 손자도 잘 지낼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골짜기 하나를 차지하여 유유자적하는 생활이 王弇州의 이른바 "번뇌와 欽羨도 없어지고 親誼와 원망도 잊었다."고 한 말에 가까우니, 십 년 가까운 세월을 큰 나무 아래 머리를 눌려서 꼼짝할 수 없었던 자로서 조금은 쾌활한 일이지만, 다만 객지 생활에 게을러진 지가 오래라 유익한 사우의 도움을 구하려 해도 沙村 老人도 병 조섭 중이라 왕래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촌내 한두 명의 젊은이와 과거 공부만 일삼고 있으니, 70나이의 노경에 승려나 도인처럼 되어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하였다.
「태극도해」의 의미에 대해서는, 상대의 깊은 공부가 달리 마음을 쓰려 해도 그럴 수 없어서 밤낮으로 서로 도우는 공부가 무익하지 않을 것이니 매우 훌륭한 일이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한가한 틈에 논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뜻에 차지 않겠지만 혼자만의 견해로 쓴 글이 스스로의 한 부 의리가 되었다 하고, 상대의 처방으로 십여 년의 고질병을 만회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어서 요사이의 안부를 묻고 三峴에서 모이기로 한 약속은 여러분의 초청에 감히 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긴급한 볼일이 있으므로 가을 기운을 타고 한 번 나아가려 한다고 하고, 그러나 근래에 병으로 인한 게으름이 심하여 반드시 그렇게 될 지는 미리 점치기 어렵다며 다만 갈 일이 있을 때 도모하겠다고 하였다.
발신인 李秉夏(1780~1852)는 본관은 韓山, 자는 忠立, 호는 信庵이다. 할아버지는 約窩 李顯靖이고 아버지는 李{土+敬}이다. 학행으로 향내의 중망이 있었다. 안동 소호리에 살았다. 三山 柳正源의 셋째 집 손자 柳道文의 딸에게 장가갔으므로 柳致喬에게는 재종매부가 된다.
수신인 류치교(1790~1862)는 자가 叔久, 호는 守齋이다. 류휘문의 長子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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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49년 이병하(李秉夏) 서간(書簡)

高川 靜座執事 回敬。
立山 李弟服人謝書。 省式謹封。
普痛罔極。
繼照咸仰十載之隣。異事也。今日之別。宿計也。彼此去留。何足深恨。而及
其別。而音信闊焉。則又不禁馳想於山川之遼隔也。一書道懷。蓋擬
議而未之遂。乃蒙曠度不較。手書委問。眷眷之仁。不止爲惜別
之情。感佩何可量也。新凉已生。而積雨苦未全晴。伏惟
靜履有相。觀書窮理之工。可按書而知也。允彧次第安侍否。尤庸
慰浣之至。服弟。自占一壑。起居惟意。弇州所謂懣羨俱黜。親怨亦忘
者。近之矣。比十年壓頭於大木之下。俯仰不得者。豈不是小快活耶。但棲
屑之餘。百骸便作鬼樣。懶廢之久。萬念不啻蹈冥。倚枕披卷。輒不勝黃
嬭之夢。雖欲求助於强輔之益。而沙村老人亦聞廢巾攝痾。不可責之以笻
屐相訪。村裏一二學究秀才。乃反以時文考課之役。强相推排。不圖七十
垂殘之境。作此僧道不成之人。極可媿笑。太極圖解之義。緣甚機關。打
撥得正知見也。賢兄精究潛玩之功。畢竟別處走不得。而麗澤日夕
之助。想亦不爲無益也。甚盛甚盛。閒令立論。政不滿人意。而以獨至
之見。積辛苦之力。長箚短錄。已作自家一副當義理。未知賢者溫
平可口之劑。果能扶回十餘年痼疾耶。但其以吐詞爲經之故。恐或誤了
多少新進之人。此非細事也。近日安否何如。傾溸不已。三峴相會之約。非
敢爲應副諸賢勤速之意。不無大煞私緊觀。甚欲乘涼一出。而
病倦比甚。姑難卜其必成。第有行且謀之耳。紙窘此來忒甚。未由
付書於隣堊大小家。傳致此恨否。不宣。伏惟
下照。
己酉七月二十四日。弟服人 李秉夏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