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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류치명(柳致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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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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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치명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40
형태사항 크기: 22.3 X 42.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정재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0년 류치명(柳致明) 서간(書簡)
1840년 11월 25일 류치명(柳致明)이 숙부에게 보내는 안부편지로, 망천(輞川)의 신행을 묻고, 이전에 갚지 못한 저포 값을 보내며, 파결(破結)하는 문제를 잘 지휘하여, 말끔하게 해결해 주십사하는 간곡한 부탁을 하면서 문내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매번 생각에만 넣어두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840년 11월 25일 柳致明이 이전에 갚지 못한 저포 값을 보내며,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숙부에게 보내는 편지
1840년 11월 25일 柳致明(1777∼1861)이 이전에 갚지 못한 저포 값을 보내며,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숙부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본 편지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단락에서는 "지난 인편에 바빠서 각각 안부를 하지 못해 몹시 죄송하고 한스럽습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모르겠습니다만, 건강은 어떠하시고, 숙모와 여러 사촌은 어떠하시며, 식솔들은 두루 편안하시고, 大瓢들 모두 평안하신지요. 葛田의 두 菌慽은 슬퍼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周翰의 얼굴이 아직 남아있었으나 지금은 끝났습니다. 금년에 또 흉년이 들었다고 하니 각 집안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러모로 그립고 울적합니다."라고 안부를 묻고 있다.
이어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을 기술하며, 숙부께 편지를 쓰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저는 근래 상황이 별고 없으나 이러한 슬픈 일을 당해 몹시 아픈데, 돌아가 곡할 길이 끊어졌으니, 통탄스럽습니다. 관아에는 모두 평안하나 邑事에 郞當함이 있어 조만간 待勘하는 일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이것은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輞川의 신행은 이미 치러졌는지요? 이전 저포 값을 매번 잊어버려 이제야 보냅니다. 종제들의 참기 어려운 상황을 가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숙주도 사람들에게 볶였다고 하므로 虎坪의 反浦叔이 돌아가는 편에 보내드리지만 다만 아우들이 분명 區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욕이나 사소한 것 때문에 결국 맹랑하게 될 수 있으니, 숙주께서 혹 이를 위해 주장하고 지휘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숙주께서 장에 가시는 행차에 惕念하여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으므로 30냥을 봉정합니다. 혹 주고받은 후에 일체를 끊어 없애주실 수 있겠습니까? 절대 범범하게 여기지 마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破結하는 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는 결코 해서는 안 되니 바라옵건대 반드시 베어내 버리십시오."
마지막 단락은 문내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돌봐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끝은 맺고 있다. "戊應은 매일 내외 臨東에 명분을 대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문내의 사람들 가운데 가난하여 견디지 못할 사람들을 매번 생각에만 넣어두고, 목금의 모든 것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니 탄식이 납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위하는 계책이 아닐 것이지만 사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탄식한들 어찌 하겠습니까. 나머지는 몹시 바빠 갖추지 못합니다. 건강을 잘 보위하시어 멀리 있는 저의 마음에 부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발신인 柳致明(1777∼1861)은 자는 誠伯, 호는 定齋이며, 본관은 全州이다. 父는 寒坪 柳晦文(1758〜1818)이고, 母는 貞夫人 韓山李氏로 大山 李象靖의 아들인 艮巖 李埦(1740∼1789)의 따님이다. 이상정의 문인인 南漢朝·柳範休·鄭宗魯·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李滉­金誠一­張興孝­李玄逸­李栽­이상정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하여 李震相, 柳宗喬, 李敦禹, 權泳夏, 李錫永, 金興洛등 많은 학자를 길러냈다. 저서로는 『定齋文集』·『禮疑叢話』·『家禮輯解』·『常變通攷』·『大山實記』등이 있다. 수취인에 관해서는 정재의 숙부인 柳晸文으로 추정한다.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박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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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40년 류치명(柳致明) 서간(書簡)

頃便忙未各候。迨切悚恨。寒事已深。伏未

氣候若何。叔母主曁從君何如。庇下
均迪。大瓢諸致一安否。葛田兩菌慽。怛然不
勝言。周翰面目猶在。而今已矣。今年亦失稔
云。各家何以經過也。種種伏慕且鬱。從姪近
狀無他。而屬此懷事甚惡。歸哭路絶。痛歎。
惟衙內俱安。而邑事甚有郞當。似當有早晩
待勘之事。此則也非惡事耳。輞川新行
已致之耶。前此苧布價。每便忘之。今才送之。
從弟輩不耐之狀。可念。叔主亦爲人所炒云。
故虎坪反浦叔歸便有所封送。而但弟輩
必不能區處。或以虛慾。或以細碎。終歸
於孟浪。叔主或可爲之主張。而指揮之耶。
叔主場市之行。不可不惕念改圖。故以三十
兩錢奉呈矣。或可與受後一切斷去耶。千
萬勿泛。如何。破結事何以爲之。此則斷不
可爲。伏望必爲刮去。戊應日名於內外臨東。
如何。門內諸人貧不能堪者。每入念中。而目今
都如不知者而過之。可歎。然畢竟無爲身之
策。勢固使然。歎且奈何。餘極忙不備。伏祝
體候連衛。以副遠忱。伏惟
下察。上候書。
庚子 至月 念五。 從姪服人 致明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