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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류치명(柳致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F.1834.1100-20180630.0136257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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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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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치명, 김건수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34
형태사항 크기: 27.2 X 4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수곡 전주류씨 정재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4년 류치명(柳致明) 서간(書簡)
류치명(柳致明)이 관직을 하게 된 이유를 김건수(金建銖)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평소 벼슬을 하지 말 것을 강론한 류치명은 부끄럽게도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직하는 상소를 여러 번 올렸지만 동료들의 만류와 임금의 명을 거스르는 것도 어려워 벼슬을 그만 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34柳致明이 벼슬을 하게 된 연유를 金建銖에게 전하는 편지
1834柳致明이 벼슬을 하게 된 연유를 金建銖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류치명김건수가 보내준 편지로 眷存함을 받아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齋에 기거하고 계신 근황을 물었다. 또 객중에서 張兄과 함께 토론을 하며 지내는 것은 매우 뜻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류치명 자신은 뜻밖에 恩擢되어 분수에 있어서 감당할 수 없고, 이치에 있어서도 청렴함을 상하게 하였다고 했다. 평소에 벼슬을 하지 말 것을 강론하였는데 지금 벼슬을 하는 상황에 놓여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한 번 사면하는 疏를 올렸는데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 보다 특이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혐의가 있고, 韜晦를 잘 하지 못해서 良尙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관직에 나간지 4~5일이 되었고, 오늘 아침 사직서를 올리려고 했는데 동료들의 계속된 만류와 矯拂하는 것도 어려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사직서를 올린 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어 선영에 참배를 한 뒤 고향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定齋先生文集附錄卷之一』 「年譜」 1834년에 기록되어 있다.
발신자는 류치명(1777~1861)으로 본관은 全州, 자는 誠伯, 호는 定齋 이다. 李象靖의 외증손이고, 아버지는 柳晦文이며, 어머니는 韓山李氏이다. 南漢朝·柳範休·鄭宗魯·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수신자는 김건수(1790∼1854)로 보인다. 편지 첫머리에 明齋에 숙직하는 분께 답장을 올린다는 내용이 있다. 1834김건수明陵別檢에 제수되고, 같은 해 10월 류치명승지로 임명이 된다. 편지 끝에 류치명이 자신을 戚從이라고 칭한 것으로 보아 나이가 어리거나 항렬이 낮은 인척 사인 것을 알 수 있다. 全州柳氏는 義城金氏와 대대로 世誼를 맺고 있다. 또 둘 사이의 나이를 보면 류치명이 칭한 호칭과도 부합한다.
『全州柳氏大同譜』,
1차 작성자 : 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34년 류치명(柳致明) 서간(書簡)

明齋 直中 回敬。

省式。昨於院中承訊。卽付謝矣。出直之路。
復擎惠寄。抵泮見鄙書。未達屢承
眷存。修復此遲。想以爲訝矣。仍審
齋居履用萬相。日與張兄對討。此是旅中。
極適意事。松籟之起鄕愁之感。自應有接接
之道。深以爲慰。戚從服人。意外
恩擢。在分非堪。在理傷廉。亦知自愧。而不能因免。
今承示意。此古義也。爲之一歎。平常。豈不講論
及此。而。身履其境。乃有包羞之失。良自恨懊。
尊有此所見。不嫌相示。始知相與之深矣。
張兄乃不一警。何也。豈以爲已然之事。不必言耶。
鄙亦一疏辭免。又艸再疏矣。旋思如此自處。
有標異之嫌。從前不善韜晦。致此良尙。所以
欲出肅便辭。亦有人來言如此。所以輕易出
脚矣。旣出之後。今旣四五日。尙不能脫出。方欲
於今朝呈辭。而諸僚皆固挽不已。又以矯拂爲
難。未知果如意否。呈辭後。欲往相唔。仍拜先
壠後。尋鄕。而未知能卽遂。良以爲悶。餘。不宣
式。
卽。戚從服人 致明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