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3월 11일 趙顯湜이 柳徽文에게 자신의 돌아가신 조부의 행장을 써주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2년 3월 11일 趙顯湜이 柳徽文에게 자신의 돌아가신 조부의 행장을 써주기를 부탁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지난 해 나누었던 대화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하고, 중간에 여러 번 안부 편지를 받았으나 게으른 습관과 용무 때문에 답장을 하지 못하여 부끄러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후, 근래 따뜻한 날씨에 공부하는 체후는 진중하며 가족들도 고루 잘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많은 초상을 겪어 몸만 겨우 보전하니 할 말이 없다고 하며 상대가 벼슬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편지로 축하하지는 못하였으나 기뻐하는 마음은 금할 수 없다고 하고, 從祖父께서 평소에 기대하던 뜻에 부응하였으니 축하해 마지않는다고 하였다. 또 『常變通攷』를 이미 간행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한 질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자신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집을 지금 목판에 새기려 하는데, 아직도 행장을 갖추지 못하였다 하고, 세상을 다 둘러 볼 때 장석들은 다 돌아가셨지만, 상대가 이미 세인의 존중을 받는 자리에 있는 데다 할아버지의 실상을 자세히 아니 묻힐 수 있는 사실을 천명해 주기를 청하였다. 덧붙여 오래 막히었던 회포를 풀 겸 몸소 찾아가 말해야 할 것이나 먼 길을 무릅쓰고 갈 근력이 못되므로 종을 대신 보내니 이해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으로 幼七이라는 동항 친척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하여 참혹하고 애통해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에서 언급한 자신의 종조부는 류휘문의 외조부인 梧竹齋 趙宜陽을 가리키며 『常變通攷』는 류휘문의 족숙이자 스승인 東巖 柳長源이 저술한 예서이다.
발신인 조현식은 본관은 漢陽, 자는 士淨이다. 말미에서 자신을 內從이라 하였지만 류휘문의 내외재종 간이 된다. 조부가 八友軒 趙普陽이니 오죽재 조의양에게 종손자가 된다. 예천 遁山에 살았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