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2월 28일, 李秉夏가 柳徽文에게 『大學』 序文과 『中庸』의 鬼神章, 15章의 或問 呂氏說 등에 보이는 의난처를 질문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1832년 2월 28일, 李秉夏가 柳徽文에게 『大學』 序文과 『中庸』의 鬼神章, 15章의 或問 呂氏說 등에 보이는 의난처를 질문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열흘간의 강학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상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충만한 마음으로 남쪽으로 돌아왔다 하고, 봄추위가 아직은 심한데 기침을 하는 증세는 좀 나으며 어른 모시고 아이들 가르치는 생활은 따뜻해지는 날씨처럼 함께 더 좋은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는, 남쪽으로 돌아오니 지정 친척 중 그 사이에 요절한 사람이 둘, 癘疫이 들어 위태로운 사람이 하나, 그 밖에도 근심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난감하다고 하였다.
본론으로, 지난번의 지론에 대해서는 패복할 만한 곳도 있고 질의할 만한 곳도 있었는데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하여도 끝내 의미를 알 수 없는 곳이 있으니, 『大學』 서문의 일부와 補亡章의 일부, 『中庸』의 귀신장, 15장 或問의 여씨설, 『心經』에서 主敬이 主靜이라 한 곳이 모두 미결처인데, 모두 하나하나 적어 보여서 분명히 가르쳐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또 陀陽西院의 모임에는 龜溪院長과 文學公 및 瓢兄이 모두 오고 다행히 상대도 함께 왕림할 것인데, 이어서 구암과 고운사 부근에서 단란히 모임을 가진다면, 결함이 많은 세상에서 참으로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몹시 기대된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損齋集』이 여기에 왔을 때 인편으로 상대 문중의 여러분을 초대하면서 상대방은 병환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잘못 알고 청하지 못하였으니, 매우 한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발신인 李秉夏(1780~1852)는 본관은 韓山, 자는 忠立, 호는 信庵이다. 할아버지는 約窩 李顯靖이고 아버지는 李{土+敬}이다. 학행으로 향내의 중망이 있었다. 안동 소호리에 살았다. 三山 柳正源의 셋째 집 손자 柳道文의 딸에게 장가갔으므로 柳徽文에게는 종질서가 된다.
수신인 류치교(1790~1862)는 자가 叔久, 호는 守齋이다. 류휘문의 長子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