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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권현상(權顯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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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현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2
형태사항 크기: 27.5 X 47.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마령 전주류씨 호고와종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2년 권현상(權顯相) 서간(書簡)
1832년 2월 5일에 예천 용문권현상(1782~1840)이 책을 간행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로 안동 임하의 전주류씨 호고와댁에 보낸 편지이다. 권현상은 상대방이 자신의 집으로 한 번 왕림해서 간행할 책의 전체 분량 가운데 첫 번째 권의 범례와 목록에 대해 검토해 달라고 하면서 열흘 정도 소요될 것으로 짐작했다. 상대방이 오는 날짜를 이번 달 그믐이나 다음 달 초순으로 정하면 좋겠으며, 그 날짜를 정해서 미리 알려주면 권현상 쪽에서 안동 소호리의 한산 이씨 이병원에게도 알리겠다고 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32년 2월 5일에 예천 용문權顯相안동 임하의 전주 류씨 호고와댁에 책을 간행하는 일로 의논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한 번 왕림해주실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
1832년 2월 5일 예천 용문權顯相(1782~1840)이 안동 임하의 전주 류씨 호고와댁에 책을 간행하는 일로 자신의 집으로 한 번 왕림해주실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의 앞부분에는 기축년에 본인이 상중에 있을 때 상대방이 특별히 위문편지를 주었지만 답장 편지를 쓰는 것 외에는 아직까지 문안편지를 쓰지 못해 감사함과 죄송스런 마음이 시간이 오래되어도 그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상대방의 도를 닦는 생활은 잘 보중되고 고요한 가운데 이치를 탐구하는 것은 남마다 절묘하게 부합한지 물었다. 상대방은 산림에 자취를 감추고도 세상의 알아줌을 입었으나 고향산천을 굳게 지키겠다[東岡固守]는 뜻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상대방의 뜻은 높다고 할 만 하지만 세상의 여망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하나도 펴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긴다고 했다. 상대방 집안의 삼현(三峴)이 세상을 떠나서 덕이 있는 어른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한 슬픈 회포를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묻고 본인도 집안 종질을 잃은 지극한 슬픔 때문에 바깥일에는 뜻이 없어 아직까지 상대방에게 달려가 조문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 때문에 슬픔과 부끄러움이 교대로 이른다고 하였다.
그 다음에는 본인의 상황을 언급했다. 권현상은 어버이 상이 끝나 상복을 벗은[外除]1)1) 『예기』 「雜記 下」에 "부모의 상은 外除를 하고, 형제의 상은 內除를 한다.〔親喪外除 兄弟之喪內除〕"라는 말이 나온다. 어버이의 상을 당해서는 내면의 슬픔이 남아 있더라도, 기한이 차면 예법에 따라 외면의 喪服을 벗는 것을 외제라고 하는 반면, 형제의 상을 당해서 외면의 상복을 아직 벗지 않았어도 내면의 슬픔은 점차로 감소되는 것을 내제라고 한다. 지 얼마 되지 않아 의관이 남들과 같지만 마음은 감히 드릴만한 말이 없다고 했다. 先代의 책에 관한 일은 착수가 멀지 않았으나 두서가 아직도 어지럽다고 했다. 책의 간행으로 비방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남의 눈에 함부로 보이고 싶지 않아 스스로 ‘染指’를2)2) 손가락을 고깃국에 넣어 국물을 찍어서 맛보는 것으로, 자기 분수에 지나친 이득을 얻으려는 데 비유한 말이다.『左傳』 宣公 4년에, 춘추 시대 鄭靈公이 자라 국을 먹으면서 公子 宋을 불러 놓고는 자라 국을 주지 않자, 공자 송이 노하여 국솥에 손가락을 넣어 국물을 찍어 맛을 보고 나가버렸고, 그 후 그는 영공을 시해했다고 한다. ‘염지’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중대한 일의 도리에 있어 끝내 헤아림이 부족하여 일찍이 상대방을 초정하고 싶어서 근년에 편지를 드렸으며, 이번에 상대방의 『통고』 교감이 끝나 구애됨이 없을 것이니 한번 왕림해 달라고 했다.
全書는 방대하여 이번에는 일에 손을 댈 수가 없는데, 상대방에게 의논드리고 싶은 것은 첫 번째 권의 범례와 목록 등의 일이라고 했다. 열흘 정도 소요될 것으로 짐작되니, 부탁을 물리치지 않는 것도 군자의 독실하고 두터운 풍모와 관계된다고 했다. ‘문학현공’과 함께 와서 대역을 빛내달라고 하면서, 이 일에 대해 몸소 상대방에게 나아가 부탁해야 하지만 事契의 중요한 것을 믿고 먼저 편지로 문안을 대신하니 혹 간략하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여기지 마시고 상대방의 넓은 도량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이 일에 대해 李 淸河에게도 간청했더니 기일이 정해지면 온다고 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권현상은 이 모임의 날짜를 이번 달 그믐이나 다음 달 초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이후 간단한 인사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편지를 끝맺은 이후 추록을 적었는데, 만약 일이 다음 달 그믐과 초에 있다면 매우 바쁠듯한데, 올 수 있는 날을 빨리 알려주면 권현상이 직접 蘇湖로 알리겠다고 했다.
편지의 내용에서 언급한 三峴은 1832년에 졸한 好古窩 柳徽文으로 짐작되고, ‘李 淸河’는 청하 현감을 역임한 대산 이상정의 손자인 所庵 李秉運(1766~1841)으로 추정된다.
발신자 권현상은 草澗 權文海(1534∼1591)의 8대손으로 권문해가 쓴 『대동운부군옥』의 간행을 주도했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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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권현상(權顯相) 서간(書簡)

己歲。以顯相在憂。特賜存慰。循例修謝之外。
更未續候起居。感與悚竝。久猶靡已。伏惟春中。
德履崇衛。靜中探賾。日有竗契。超然處否。山
林晦跡。果被世知。而不能動東岡固守之志。在
賢者。可謂高矣。而在輿望。以不能一攄所抱。爲恨。
大喪。同堂耆德。漸至星零。慟悼之懷。何
以按住。聞葬禮將擧。而私家以從姪慘極。無意
外事。未得奔赴。悲愧交至。顯相。外除屬耳。冠服
猶人。情事無可喩。先書之役。始手不遠。而頭緖尙亂。
向來眞安羣謗。或至盈車。不欲浪掛人眼。不免
私自染指。然其在重事之道。終欠商量。曾於
座下欲一番惠徼。頃年以一紙上塵者。此也。今則通
考已勘。想無所閡。或賜一枉否乎。全書則浩
穰。今不可下手。所欲奉議者。只首卷凡例。目
錄等事耳。計不過費了一旬。勿之揮斥。亦
係君子篤厚之風。幸與文學賢公。聯鏕肯
臨。以賁大役。如何如何。事當致躬陳請。而敢恃事
契之重。先以書替。或不以簡慢。而包以弘度耶。
頃於李淸河。亦以此事委懇。則摧重於執事
一行。指期相示。則欲掃萬來會云。幸以今晦來
初間。見念。是所區區。餘。當續候不備。狀禮。
崇炤。謹候狀。
壬辰 二月 五日。契下少弟 權顯相 頓頓。

如事在來月晦初。甚忙迫。望須從速
示期。則自此通蘇湖計耳。